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요즘 문화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성폭력 범죄를 고발하는 `미투(me too)`운동이 번지고 있다. 일전에 잇따른 성추문에 휩싸인 모 연극연출가의 기자회견 모습을 시청하면서 필자는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한국의 연극계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그가 "극단에서 18년간이나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형태의 일"을 자행했음을 밝혔다.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악순환이 반복되었다"고도 말하였다. 또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면서도 "성관계를 한 것은 맞지만 폭력적이거나 물리적인 제압은 없었다"는 그의 궤변과 유체이탈적 화법은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물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욕구를 포함한 욕망은 존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욕망에 집착하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채근담에서도 "인욕(人欲), 즉 인간 욕망의 길은 한없이 좁아서 겨우 발을 붙였는가 하면 어느새 눈앞이 모두 가시덤불과 진흙탕이 되어버린다"면서 사람들이 감정의 유혹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듯, 모든 욕망에는 절제하려는 노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요구된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의 존엄성을 유린하고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가하는 사악한 무리, 특히 권력을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은 사회의 암적 존재이다. 게다가 권력의 뒤에 숨어서 쉬쉬하려는, 즉 공공연한 비밀을 공유하는 이들 또한 방관자이자 어떤 면에서는 가해자와 공범인 셈이다.

권력의 허상으로 비롯된 그 더러운 욕망에 침을 뱉자. 사필귀정이다. 그간 숨기기에 급급했던 치부들, 그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경악하며 그 환멸과 참혹함에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면 아래 잠겨 있던 비리의 욕망덩어리와 부조리한 행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만천하에 공개해야 한다. 더불어 철두철미하게 파헤치고 해부해 썩은 부위는 과감하게 도려내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자는 그에 걸맞은 처절한 대가를 치르도록 징벌하는 게 마땅하다. 불가항력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당당하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준 피해자분들에게는 진심으로 고맙고, 무한한 응원과 위로의 마음을 표한다. 김채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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