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이야기 같지만 마치 엊그제 처럼 느껴지는 50년 전 일이다. 어린시절, 그때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더운 잿물에 두들겨 세탁한 옥양목 조각들은 빨랫줄 위에 뻣뻣하게 얼어버린 채로 널려 있다. 걷어서 윗목에 놓으면 깨질 것 같은 빨래들은 이내 녹아든다. 눅진해지면 네 귀 맞추고 올 맞추어 탁탁 털어 네모 반듯하게 접어 놓는다. 그런 다음 지루한 빨래 밟기가 이어진다. 두어시간 정도 꼬박 서서 꾹꾹 눌러 밟아야 한다. 언니들도 둘이나 있건만 밟는 건 언제나 내차지다. 몸무게가 가벼운 나는 오래 밟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나만 시키는 어머니가 야속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요령피우는 언니들보다 내가 잘해서 그랬 던 것이라고 위안을 삼고 있다. 요리조리 구석구석 꼭꼭 밟아 놓으면 다듬이 돌로 간다.

토독토독 투탁투닥.

어머니와 마주 앉아 박달나무 방망이로 장단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려서 안해도 되지만 한소리 들어가며 다듬이질을 하는 나도 참. 처음에 두드릴 때는 방망이끼리 부딪히면서 손에 물집도 잡힌다. 세탁할 때마다 뜯고 손질한 후에 다시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요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옷감이 귀하던 시절에는 얼마나 효율적인 방법인지 알고 보면 깜짝 놀란다. 키가 자라도 다시 만들 때 조금만 더 보태면 되고 모자란 소매를 자꾸 이어주면 색동도 된다. 헤진 곳은 그 곳만 다른 옷감으로 바꿔주면 모양까지 달라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볼 수 있다. 삼회장 저고리도 이래서 생겨났을 것이란 추측도 해본다.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는 나이가 드셔도 옷을 직접 지어 입으셨다. 딸이 한복을 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당신이 만든 옷이 더 좋다며 옷감만 달라신다. 그러고는 얼마 후 여든의 나이에도 직접 지으신 옷을 입고 깜짝 나타나셨다.

이럴수가! 원단 올을 풀러서 다시 꼬아 실로 만들고 단추대신 십원 짜리 동전으로 싸게 단추를 만들어 달고 오셨다. 부족함이 창조의 어머니라더니! 귀금속을 몸에 지니기 위하여 노리개가 생겨났고 은장도가 장신구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어머니의 십원 짜리 동전은 한복에 담긴 지혜의 보물처럼 느껴졌다. 설날즈음 음력 정월이면 바느질로 겨울 밤을 지새며 할아버지 할머니 한복을 꿰매드렸던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권진순 한복디자이너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