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은지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다. 그리고 설날이라는 또 다른 새해를 맞이했다. 우리는 두 번의 새해를 맞이하는 행운이 있기에 새해 초에 세웠던 계획과 다짐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담배를 끊으려고 결심하지만 대부분 한 달도 채 못가서 포기하고 만다. 담배의 중독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문화적 영향도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 전 70%에 달하던 우리나라 성인 흡연율은 30% 후반대로 감소했다. 이러한 성공은 오랜 기간 동안 민간 금연단체의 금연 캠페인과 정부의 국가암관리정책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의 담배규제기본협약에 비준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금연정책의 열매다. 담배 광고 금지, 금연 구역 지정, 방송 및 신문 등에 흡연 장면 게재 금지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금연 정책으로 알려진 담배 가격 인상까지 시행됐다. 또 담배 갑에 흡연으로 암에 걸린 환자의 사진 등 담배 경고를 강화하면서 공중파를 통한 전국적인 금연 홍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은 흡연율이 줄어들지 않고 정체를 보이고 있다. 아직도 많은 성인들이 흡연을 하고 있고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제까지의 금연 운동은 대부분 흡연에 따른 암 발생 등 건강 문제로 접근했으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성인, 그리고 심지어는 흡연이 암과 뇌졸중 심장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당히 많은 의사나 의료인들조차 흡연을 지속하고 있다. 또 금연 교육을 받고 있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흡연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점을 보면 흡연이 단순히 건강에 나쁘다는 설득만으로는 성인 흡연율을 줄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볼 때 흡연 인구가 늘어난 계기는 전쟁과 경제적 악화 등 사회적 불안과 연관이 있다. 미국은 남북 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경제 공황이 커다란 계기가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그리고 경제 개발의 과정에서 담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리 국민은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조차 없이 긴장감과 고단함을 담배 한 모금으로 달래야 했다. 우리는 왜 함께 술을 마실까. 술이 건강에 나쁜 것을 알지만 서로 독배를 나누면서 생명을 함께 한다는 동지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하는 군가에서 보듯이 목숨을 건 담배에서 주는 감정적 위안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미국인의 흡연율이 가장 낮아졌다. 동시에 미국인의 취업율이 향상되고 행복지수는 역대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행복한 국민이 담배를 덜 피운다는 얘기다.

유엔에서는 해마다 세계행복지수를 발표한다. 국민소득, 사회적 지지 정도, 건강 수명, 선택의 자유, 관용성, 부패 정도를 기준으로 각 나라의 행복의 정도를 측정한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어떨까. 2015년 우리나라는 GDP 세계 11위, 국민소득 30위인데 행복지수는 57위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세계기부지수는 세계 74위다. 그리고 자살률은 세계 1 위이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적인 풍요만으로 국민이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낮은 행복지수는 사회적 지지가 약하고 남을 도와주는 관용성이 없어서 사회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청년 실업도 큰 문제다. 유럽에서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직업을 잃어버렸을 때의 스트레스와 건강을 잃어버렸을 때 스트레스를 비교하면 실직 했을 때가 질병에 걸린 경우보다 3배의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고 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데 어떻게 건강을 걱정하고 챙길까. 전쟁터에서 당장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자신의 건강을 염려할 여유가 있을까.

이 세상이 지나친 경쟁으로 마치 매일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면 담배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나친 경쟁으로 부추기지 말아야 하며, 대학도 서열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직장은 승진이나 높은 연봉을 지향하기 보다는 일자리를 나누어 고용을 늘리고, 임금 격차 해소 그리고 삶의 질이 제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사회적지지 체계가 확대되고, 남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함께 나누는 기부문화가 활발해져서 사회적 관용이 넘치는 행복한 사회가 돼야 한다. 이제 금연 운동은 단순히 건강 운동이 아니라 사회 시민운동으로 진화해야 한다. 행복이 있는 세상, 복지가 확립된 사회가 돼야 금연 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 이승훈 을지대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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