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인 탓에 문상객은 적었고 식당 역시 빈자리가 눈에 많이 띄었다. 구석진 자리로 찾아들어간 나는 날라져온 음식을 먹으며 상주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이야기 중간 중간 친구는 문상객을 맞으러 자리를 떠야했다. 그렇게 자리를 뜨곤 하던 친구가 어느 순간 문상객 한 사람의 손을 이끌고 내 쪽으로 향하며 반가운 내색을 했다. "우리 1년 후배, 알지?"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선배님?" "이런 자리에서야 만나게 되네. 잘 지내지?" 신경외과를 전공한 후배라는 것만 알 뿐 그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레지던트 1년 차 때 인턴이었을 테고 그렇다면 훌쩍 25년이 세월이 흘렀다는 얘긴데, 묘하게도 얼굴만큼은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뭐하면서 지내?" 마주보고 앉았지만 딱히 할 말도 없던 터라 어색함도 무마할 겸 던진 질문이었다. "모르고 있었어? 대학병원 신경외과 과장이잖아." 곁에 앉아있던 상주인 친구가 거들고 나섰다. 신경외과 과장이라는 말에 나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이라면 그야말로 신(神)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런 존재에게 단지 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도 훌쩍 2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있는 것이라니. 그렇다고 갑작스레 말을 높이자니 그것도 영 아닌 것 같아 나는 간간이 존댓말을 섞어가며 엉거주춤 말을 이었다. "부럽다니요, 선배님. 다 옛날 얘기고 그야말로 죽을 맛입니다. 대학병원 신경외과에 1년차 레지던트가 없다면 말 다했지 뭡니까." "1년차 레지던트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격무와 응급상황에 시달리는 외과가 기피대상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달랑 1명을 뽑는 신경외과 1년차 자리마저 공석이라니, 쉽사리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럼 드레싱이나 회진준비는 누가 하고,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 덜컥 문제라도 생기면……?" "드레싱은 전담간호사가 하고 저희 교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는 형편입니다." 나 역시 외과의사인지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대학병원의 신경외과에서 달랑 1명의 레지던트도 채우지 못한다는 현실 앞에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을 다루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가 외면당하고 푸대접을 받는다는 거야 진즉에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삼십분 남짓 앉아있던 나는 상주인 친구와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떴고 후배 역시 일이 있는 양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례식장에서 밖으로 나오자 시커먼 하늘에서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몸도 마음도 무겁기 그지없었다. 문상을 두 군데 다녀오기라도 한 것인가. 남호탁 수필가·예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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