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생각보다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사소하게 기쁜 일은 덩치 큰 다른 일들에 금세 묻히기 십상이다. 유난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남들은 모두 행복한 것만 같고 다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찌된 게 나만 운도 복도 없는 것인가 실망한다. 그렇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일이란 게, 일상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물론 어쩌다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불시에 축복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쉽게 얻은 것은 그만큼 쉽게 잃기 마련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질투하고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라면, 마음에서 놓아버리면 그만이다. 괴로워하고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 찾아보면 세상엔 그것 말고도 목숨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이 무수하기 때문이다.

채근담(前集-06)에 "거센 바람과 굵은 비에는 새들도 근심하고 맑은 날씨와 따뜻한 바람이 불면 초목도 기뻐한다. 그러므로 천지에는 하루라도 화평한 기운이 없어서는 안 되며, 사람의 마음 또한 하루라도 기쁨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일전에 팔순을 맞은 부모님께 조촐한 식사자리를 빌려 뜻 깊은 선물을 드렸다. 지난한 세월 속에서도 아들딸 구별 않고 6남매에게 똑같이 대학교육의 기회를 주시고, 성실과 검소함을 몸소 실천하시며 올곧게 키워주신 은혜를 기리는 글귀를 새긴 `감사패`였다. 다 함께 큰절을 올리고, `어머님 은혜`를 제창하는데 울컥, 목울대가 뜨겁게 당겨졌다. 온 가족이 무탈하게 지금 이렇게 한 자리에서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가.

감정표현에 익숙지 않은 우리들은 가까운 이들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속에 제 아무리 큰 고마움을 품고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이어도 좋다. 감사를 느끼는 그 순간에는 꼭 감사함을 표현하도록 하자. 마음을 전하는 데 굳이 거창할 필요가 있겠는가. 김채운 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