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과 관련해서는 사실 음모론이 존재한다.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의 유언과는 상관없으며, 노벨재단에서 상금을 주지도 않는다. 노벨이 유언을 남길 당시에는 경제학이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기 전이어서 노벨이 경제학을 시상 분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재단과 상관없이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1968년에 만들어졌다. 정식 명칭도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과학상(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라는 긴 이름으로 `Nobel Prize`라는 단어는 없다. 그런데 왜 노벨경제학상이라고 부르는가?
어느 분야에서나 `권위`는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위에 있는 사람 또는 집단에게 필요하다. 특히 종교적 또는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경우 서로 다른 이해 집단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권위에 기대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해에 맞는 논리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이익을 지키기 위해 더욱더 권위적 요소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의 집중도는 커지게 되며,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노벨경제학상에 대한 음모론은 여기서 시작한다. 경제학의 원조인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발표된 해는 1776년이다. 국부론은 자본주의의 이상을 설파한 책으로서 오늘날 최초의 체계적인 경제학 저서로 알려져 있다. 노벨이 살아 있을 당시 `국부론`은 경제학 서적이라기보다는 철학 또는 문학 서적에 더 가까웠다. 아담 스미스는 국가가 여러 경제 활동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 경쟁 상태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발전된다고 주장했다. 자본의 자유를 주장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자본을 소유한 `그들`이 노벨경제학상을 통해 이러한 주장에 더욱 권위를 덧붙이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음모론의 골자다. 이에 따라 노벨경제학상을 해방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 광풍에서 많은 이들이 빠지는 논리 중 하나가 음모론에 기댄 주장이다.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우리`와 `그들`의 대립구도를 만들고 `우리`가 힘을 합쳐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준비이고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말이다. 지금 당장 가상화폐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가 위험하며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은 혜안을 가진 사람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 피라미드식으로 투자자(?)를 유인하는 전형적인 형태다.
아담 스미스의 주장 중 다른 중요한 하나는 `노동 가치설`이다. 자본과 노동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일반인들이 보유한 재산 중 유가증권의 비중이 높다. 이는 가계의 부(富)의 분포가 우리나라처럼 부동산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 등 사회적 자산을 공유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노동에 의한 부의 획득과 투자에 의한 자본의 축적은 균형을 필요로 한다. 음모론은 특정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오로지 여기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현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곳이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하고 상금 또한 동일하다. 안치득 ETRI 방송·미디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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