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득 ETRI 방송미디어연구소장
안치득 ETRI 방송미디어연구소장
노벨상은 1901년부터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의 5개 분야에서 인류 문명에 괄목할 만한 학문적 기여 또는 헌신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매년 10월 생존자에게만 수여된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로서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였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졌다. 유언에 따라 노벨평화상은 노르웨이가 결정하고, 나머지 상은 스웨덴이 결정하며 시상식도 따로 한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사용돼 많은 사람들이 살상되는 것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는데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을 때 한 신문에 실수로 그의 부고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서 노벨은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고 이것이 노벨상을 만든 동기가 됐다고 한다.

노벨경제학상과 관련해서는 사실 음모론이 존재한다.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의 유언과는 상관없으며, 노벨재단에서 상금을 주지도 않는다. 노벨이 유언을 남길 당시에는 경제학이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기 전이어서 노벨이 경제학을 시상 분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재단과 상관없이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1968년에 만들어졌다. 정식 명칭도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과학상(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라는 긴 이름으로 `Nobel Prize`라는 단어는 없다. 그런데 왜 노벨경제학상이라고 부르는가?

어느 분야에서나 `권위`는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위에 있는 사람 또는 집단에게 필요하다. 특히 종교적 또는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경우 서로 다른 이해 집단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권위에 기대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해에 맞는 논리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이익을 지키기 위해 더욱더 권위적 요소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의 집중도는 커지게 되며,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노벨경제학상에 대한 음모론은 여기서 시작한다. 경제학의 원조인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발표된 해는 1776년이다. 국부론은 자본주의의 이상을 설파한 책으로서 오늘날 최초의 체계적인 경제학 저서로 알려져 있다. 노벨이 살아 있을 당시 `국부론`은 경제학 서적이라기보다는 철학 또는 문학 서적에 더 가까웠다. 아담 스미스는 국가가 여러 경제 활동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 경쟁 상태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발전된다고 주장했다. 자본의 자유를 주장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자본을 소유한 `그들`이 노벨경제학상을 통해 이러한 주장에 더욱 권위를 덧붙이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음모론의 골자다. 이에 따라 노벨경제학상을 해방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 광풍에서 많은 이들이 빠지는 논리 중 하나가 음모론에 기댄 주장이다.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우리`와 `그들`의 대립구도를 만들고 `우리`가 힘을 합쳐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준비이고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말이다. 지금 당장 가상화폐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가 위험하며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은 혜안을 가진 사람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 피라미드식으로 투자자(?)를 유인하는 전형적인 형태다.

아담 스미스의 주장 중 다른 중요한 하나는 `노동 가치설`이다. 자본과 노동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일반인들이 보유한 재산 중 유가증권의 비중이 높다. 이는 가계의 부(富)의 분포가 우리나라처럼 부동산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 등 사회적 자산을 공유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노동에 의한 부의 획득과 투자에 의한 자본의 축적은 균형을 필요로 한다. 음모론은 특정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오로지 여기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현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곳이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하고 상금 또한 동일하다. 안치득 ETRI 방송·미디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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