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은 일본에 보낸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임시거주의 방식으로 떠돌며 예술가로서의 좌절과 자괴감으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이후 1956년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을 겪다가 그 해 40세를 일기로 가족 곁을 떠났다. 안타깝지만 당시 활동을 자세하게 생각할 만큼 필자의 나이가 많지는 않다. 그의 기록과 작품을 통해서만 이중섭의 역사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모 대학교에서 특강을 마치자 한 학생은 "한국의 모 화가를 아세요?" 라고 물었다. 당시 그 학생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필자를 만나서 기분이 나빠졌던 것은 아니고, 화가의 친척으로 지내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슨 가족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 학생은 모 화가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는지 그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않았다.

오늘날 승자독식이 가져오는 현대 사회의 구조 속에서 예술가란 가난할 수밖에 없다. 현재도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 가는 한 두 명의 화가와, 매우 가난한 다수의 예술가는 넘쳐난다. 슬픈 일이기도 하다. 모든 예술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가족에게는 특별한 가치를 제공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나 특별할 것이 없다. 우리가 다른 일을 할 때 저들은 자신의 세계관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예술 하는 직업을 택했을 뿐이다.

예술가는 완벽한 인격체는 아니다. 그렇게 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일반 사람들은 그 작품을 모를지라도 가족마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예술가는 더 이상 가족에 관련된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회피할 지도 모른다. 물론 예술가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고 사생활에서는 실수도 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예술가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사람들이 예술가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나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예술에 관련된 사람들이 100%의 노력을 쏟을 수 있을 때, 우리가 바라는 세상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홍원석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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