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하늘이 뚫린 듯 퍼붓는 소낙비에 잠이 번쩍 깼다. 내일부터 공연인데 러버댐에 정박시켜둔 뗏목과 소품들이 떠내려갈 것 같다. 큰 일이다. 분야별 모든 감독들과 서구청 담당 공무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런 비상이 없다. 한밤중 동시에 튀어나와 물속에 거침없이 들어가 떠내려가는 장비들과 뗏목을 부여잡았다. 나는 배우들의 옷부터 챙겼다. 물에 젖어 볼썽사납게 널브러진 옷가지를 정리하고 말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가슴까지 차는 물속에서 뗏목잡고 물살과 씨름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상공연 `갑천`은 공연 하루 전 이렇게 연습도 없는 한밤중 물잔치로 시작되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날이 밝자 어제밤을 비웃듯 파란 하늘이 보였다. 야간 공연임에도 사람들은 한여름 땡볕부터 미리 자리를 채워갔다. 끊임없이 모여든 관객은 야외 대공연장을 채우고도 넘쳐 무대 뒤까지 늘어섰다.

두둥 둥 두둥.

사람보다 더 큰 북 50대가 강 건너 성곽 위에서 한꺼번에 웅장하게 울리니 어마어마하게 모인 관중들은 이내 조용해진다. 어제 밤 빗속에서 살려냈던 그 뗏목 위에 숯뱅이 양민들이 강 건너 진격을 시작하고 뛰어가다 지칠 만큼 길고 긴 고려성에서는 양민을 제압하려는 군사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그런데! 그런데! 장군 역할 배우가 이제서야 나타났다. 급한 나머지 모양새도 갖추지 못하고 5만 명이 넘는 관객들 앞에서 그냥 갑옷을 갈아 입었다. 그런데 아뿔싸! 신발...! 내심장은 바닥으로 툭 떨어져 땅을 친다. 서울에서 내려오기로 한 장군의 신발이 이제서야 대전에 도착했단다. 하이힐 신고 뛰고 있단다. 빼곡한 관중 속을 헤치고 오고있는데도 애간장이 탄다. 고맙다는 말도 할 새 없이 신발은 장군의 발로 갔고 나는 그녀의 하이힐 뒤꿈치만 얼핏 본 채 배우의 손을 잡고 냅다 뛰었다. 무대 뒤 배까지 족히 500미터. 이렇게 스펙터클한 공연이 또 있을까.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몇 백명의 민란인들이 뗏목을 타고 물을 건너오는 장관에 일제히 사방에서 5만 관중의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제서야 한시름 놓고 대한민국 최고의 야외수상 뮤지컬을 나도 관객이 되어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까 하이힐 신고 뛰어온 서울 친구는 어디에 있지? 권진순 한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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