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출근길에 머리카락과 콧물이 언다. 남해안 양식장에서도 물고기 수백만 마리가 폐사하고 제주도 감귤은 얼어버렸다. 미국은 상어가 얼어 죽고, 바다거북은 기절하고, 나무 위에 살던 이구아나가 굳어서 땅에 떨어졌다. 유럽은 유례없는 겨울폭풍에 시달리고 이란에는 반세기만에 최대 폭설이 내렸다. 이런 당혹스런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세기말이면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해 지구생태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지금 온도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안위가 달린 심각한 문제다.

누군가는 불현듯 이런 의문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온도가 대체 뭐지? 풍문에 따르면 프렌치 키스 후에 체온이 0.2도 상승한다던데, 대체 이런 숫자들은 어디서 나온 걸까. 쉽게 표현하면 온도는 차갑고 뜨거운 감각을 수치화한 양이다. 일상생활에서 매일 접하는 값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국공통의 온도계가 지금처럼 흔해지기까지는 매우 오래 걸렸다. 수세기 정도.

16세기 말 갈릴레이도 온도계를 사용했지만, 당시에는 온도계를 만든 장인마다 기준점도 간격도 모두 달랐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사람 혈액의 온도를 기준으로 제안했다. 그밖에도 버터가 녹는 온도, 첫 번째 밤 서리, 기름이 굳는 온도, 손을 넣고 견딜 수 있는 가장 뜨거운 물의 온도, 깊은 지하실의 온도, 심지어는 건강한 몸의 온도를 기준으로 삼자는 과학자도 있었다. 건강한 몸의 온도라니, 그렇다면 건강함부터 새로 정의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 같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기준들이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제안한 기준점들이다.

통일된 체계가 필요했다. 모두가 옳다고 인정하는 정해진 재료와 정해진 순서와 방법으로 재는 것을 약속해야 했다. 표준화다. 세계 어디서든 동등하게 인정되는 단위를 만들기까지, 온도 영역에 따라 재는 방법이나 온도계가 될 적절한 재료를 알아내기까지, 온도를 정밀하게 재기까지는 수 백 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했다. 재고 있는 열의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알아내야 할 대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열역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했다. 1948년에야 비로소 국제도량형 총회에서 물의 삼중점(물, 얼음, 수증기의 세 가지 형태가 함께 있을 때)을 온도 기준으로 삼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 열역학적 온도를 정의하고 국제단위계 기호를 켈빈(K)으로 결정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섭씨 온도에 273.15를 더하면 켈빈 온도가 된다. 예를 들어 섭씨 20도를 국제단위계로 표시하면 293.15 K이다.

올해 11월,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온도 단위에 대한 정의가 바뀔 예정이다. 현재까지 켈빈은 물이라는 특정 물질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매우 낮거나 높은 온도 영역에서 정확도가 불충분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물리화학 값인 볼츠만 상수를 이용해서 온도의 단위를 새로 정의하기로 했다. 얼마나 정확하게 재었는지를 보장하는 측정불확도가 백만분의 일보다 작을 정도로 깐깐하게 말이다. 이제 집에 있는 체온계를 내다 버리고 새로 사야할까. 그건 아니다. 독감에 걸려 병가를 낼까말까 고민하며 내 혓바닥 온도를 슬쩍 재 볼 때 그토록 정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백만분의 일보다 훨씬 더 작은 것이 엄청난 차이를 주기도 한다. 내 연구 분야인 나노과학만 해도 나노 영역, 즉 `십 억 분의 일` 수준을 다루는 세상 이야기다. 온도와 나노가 결합된 예로는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이 있다. 섭씨 -273도 근처의 초극저온(정확히는 20 나노켈빈(nK), 즉 0.00000002 K)에서만 관측됐고, 양자컴퓨팅에 응용될 수 있는 현상이다. 나노 영역으로 정밀하게 측정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던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다. 오직 잴 수 있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보이기 때문에 열리는 세상도 있다. 이승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