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필 성악가

예술, 기술, 상술

어릴 적 설 특집 TV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3시간 42분이라서 이틀에 나눠서 방영했던 기억이 있다, 옛날사람들은 우리보다 참을성이 많았나? 요즘영화는 두 시간만 넘어도 길다고 느끼는데,

언젠가 강의시간에, `왜 가요는 보통 3분에서 5분 사이의 길이일까?`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들은 논리와는 꽤 거리가 멀었다. `그 길이가 가장 감성을 자극하는 분량이라서` `3분에서 5분 사이가 지루하지 않고 딱 알맞은 시간이라서.`

본론부터 얘기하면, 노래와 영화의 재생시간은 철저하게 기술적이고 상업적인 이유였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시장에서 살아남은 음악 저장 매체는 LP레코드나 CD, 혹은 MP3가 아닌 초창기 나팔관 축음기에 돌리던 SP음반이다. 1877년부터 1948년까지 71년 동안이나 음반시장을 독점했는데 분당 78회전짜리 12인치 SP판은 4분 30초가 최대 재생분이었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연주회장이 아닌 곳에서 음악감상이 가능해지고 음반이 소비되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게 딱 4분 30초 까지였다, 당연히 그 이상은 녹음이 불가능했고, 스트라빈스키 같은 작곡자는 아예 녹음을 위해 각 악장이 3분짜리인 피아노 세레나데를 작곡했다.

기존 클래식 소품들도 5분이 넘어가는 곡들은 반복구를 자르거나 템포를 빠르게 연주해서 4분 30초에 맞춰 음반에 수록하기 시작했으니 대중음악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깨지기 쉬운 재질 특성상 두터운 `앨범`자켓에 보관하고 단 `한 곡`만 수록하니 `싱글앨범`의 어원이 되었고, 그렇게 무려 71년간을 음반시장은 4분 30초 길이로 강요받으며 어느새 슬그머니 기준이 돼버렸다. 이것을 마크 카츠(Mark Katz) 교수는 `포노그래프(phonograph)효과`라고 정의했다, 더 긴 시간을 담을 수 있는 오늘도 이 습관은 꽤 단단해 보인다. 그럼 영화는 반대로 왜 점점 짧아졌을까. 3시간 42분짜리 영화는 하루에 4회차 밖에 상영하지 못한다면, 2시간짜리는 7회나 8회차까지 가능하다, 당연히 수입이 늘어날 수 밖에.

예술이라는 이유로 그 기원과 수요까지 감성적으로 헤아릴 필요는 없겠다. 세상사는 틈바구니를 헤쳐 나와 살아남은 예술이라면 더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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