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시계가 갑자기 빨라졌다. 그만큼 한국당은 옹색해졌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국당에서 지금까지 개헌에 반대한다고 한 적이 없음에도 개헌 이슈가 수면위로 올라올 때마다 왜 비난이 쏠리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부와 여당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겼다는 점이 뼈아픈 것 만큼은 분명하다.

30년이 넘은 기존 헌법으로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담아내고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는 데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기본권을 확대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에도 큰 이견은 없다. 나아가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의 상징인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명시해야 한다는 것 역시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이는 없다. 정부 여당은 이 같은 민심에 궤를 맞춰 당론을 모아내거나 대통령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공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에 치중하거나, 심지어 개헌 없이도 지방분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우선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폐해로 이번 개헌논의가 시작됐으니, 권력구조 개편 없는 개헌은 `촛불 기만`이고, 시쳇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게 야당의 주장인데, 이야말로 정치논리다. 사전적 의미만 살펴보더라도 헌법은 `일반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즉, 권력구조 개편을 의미하는 통치조직은 일부분일 뿐이다. 통치작용의 기본원리를 중앙집권으로 할지, 지방분권으로 할지 방향성을 정하는 것도 헌법이고, 국민기본권을 보장하는 것도 헌법인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의제라 해도, 지방분권과 기본권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개헌논의라는 점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아니다.

개헌 없이도 지방분권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더욱 턱없는 궤변일뿐이다. 헌법에 손을 대지 않아도 자치입법권과 자치조직권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나, 현행 헌법 제117조에 "지자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지방의회와 지자체의 조직과 운영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돼 있어 불가능하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나아가 우리의 지방자치는 20여 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2할 자치`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현실을 감안하면 헌법에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국가임을 반드시 규정해야 한다. 또한 주민자치권 신설, 자치 입법·행정·조직·재정권 보장, 지역 대표형 상원 국회 설치 등도 포함돼야 지방분권을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사실 개헌논의에 있어 한국당이 주도권을 빼앗긴 근본적 이유는 개헌 시기에 대한 말 바꾸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모든 정당 후보들은 올해 지방선거에 맞춘 개헌안 국민투표를 공약했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한국당에서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라는 이유로 말을 바꿨다. 이후 한국당은 어떠한 합리적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반 개헌세력`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국민적 공감을 얻기 힘들게 된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넘어온 공을 부담스러워할 게 아니라, 성사여부의 중요한 키를 쥐게 된 만큼 발전적 대안을 내놓아 성사시킨다면 더 큰 과실을 얻을 수 있다. 개헌 시기를 포함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진정성 있는 의지를 보이고, 노력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민주당도 그리 당당할 일은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가 불거졌을 당시부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지적하며 분권형 개헌을 주장했던 게 민주당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언급하자, 일사분란하게 방향을 선회함으로써 야당과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청와대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더 이상 국회 논의만을 기다릴 수 없어 정부의 개헌안 마련에 착수하는 것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그동안 야당에 대한 협치 노력이 충분했는 지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대통령은 언행일치 만으로 책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국민에게 개헌을 약속했다면 이를 성사시키기까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게 대통령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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