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이 대전에서 산 지 딱 40년째이다. 대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사회생활을 대전에서 시작했고 대전에 뿌리를 내렸다. 서울에 가면 대기 오염은 물론 사람들로부터 뿜어 나오는 공격적이고 탁한 기운으로 인해 숨이 막힌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신탄진과 갑천이 눈에 들어오면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 영락없이 나는 대전댁이다. 하지만 정부기관에서 나의 개인정보를 취할 때 반드시 출생지를 묻고 그 지역 출신으로 분류하는데 나는 매우 씁쓸한 기분이 된다. 지역 안배를 고려한 정부 인사 시, 충청에서 출생했을 뿐 서울서만 살아온 사람들이 충청인으로 분류되는 것 또한 전혀 납득이 안 된다.

대전댁이라고 하지만 평생 출연연구기관에서만 근무했던 나는 기실 대전과 큰 연결고리가 없었다. 필요한 연구비는 대부분 국가 또는 정부기관에서 지원해주었고 연구과제도 대전시와 관련된 것이 없다보니 대전시의 일들은 대개 내 관심 밖이었다. 그러한 내가 깊은 관심을 가졌다가 크게 실망한 일이 두 건 있는데 그 하나는 한참 발전하던 대전 시립교향악단 지휘자를 교체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대전도시철도 2호선을 한국기계연구원에서 개발한 자기부상열차로 놓기로 한 결정을 트램으로 바꿔버린 일이다.

1970년대 미국 피츠버그대학 유학생 시절,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준 것이 피츠버그심포니오케스트라였다. 학생용 시즌티켓을 사면 1 달러 정도로 일요일 오후 공연을 들을 수 있었는데, 정경화도 심심치 않게 와서 협연하곤 했다. 당시 상임지휘자 윌리엄 스타인버그는 1952년부터 25년 넘게 지휘하면서 피츠버그 심포니를 세계 일류 심포니로 발전시켰다. 베를린 필의 폰 카라얀, 뉴욕 필의 레너드 번스타인 등등 세계 최고 교향악단들은 대개 상임지휘자가 이 삼십년 넘게 지휘한다. 2000년대 초반 대전 시향 후원회인 `높은음자리표` 활동에 참여하면서 대전시향이 국내에서 이룩한 명성을 이어 가서 세계적 심포니로 발전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대전시장이 바뀌자 지휘자가 바뀌었고 세계 일류 심포니를 가진 문화 대전의 꿈은 사라졌다.

대전이 제2도시철도를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자기부상열차로 건설함은 지방자치단체의 숙원사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 성과 그리고 국가의 발전계획이 어우러진 아주 좋은 기회였다. 자기부상열차를 대전에 건설하면 기계연은 자기부상열차 유지 및 개선을 위해 기술지원을 지속해야만 하고 더 한층 첨단화된 열차 개발을 위해 후속 공동연구가 이어질 것이다. 나아가서 대전시의 여러 숙원사업들을 연구단지와 공동추진하며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대전으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시장이 바뀌면서 자기부상열차는 트램으로 바뀌어버렸다.

후임자가 전임자의 모든 일을 뒤집어엎기는 대전만의 일도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정치적 고려가 무엇보다 우선되고 짧은 주기의 순환인사체제 하에서 이와 같은 뒤집기 관행으로 인해 어느 조직이나 단기 가시적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어느 분야건 경지에 이르려면 장기간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대를 이어가며 발전 완성시키는 장인적 전통이 생기기 어렵다. 고려청자, 금속활자, 거북선 등 우리가 세계에서 수백 년 앞섰다고 자랑하는 기술들이 전승되고 있거나 세계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조선 도공들을 포로로 잡아간 일본은 도자기 명가들을 키워냈고 이들이 만든 도자기들을 비싼 값에 유럽에 수출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을 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 문화 일본을 깊이 각인시켰다.

대전은 현재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기후도 매우 좋고 입지적 조건도 대한민국 중심으로서 매우 좋다. 출연연구기관 및 산업체 연구기관들이 밀집해있다. 차기 대전 시장은 임기 4년 안에 이룰 수 있는 단기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참으로 대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대전의 가치와 장기적 비전을 추구하는 분이면 좋겠다. 정광화 전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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