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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칼럼] 평창이지 평양 아니다

2018-02-07기사 편집 2018-02-07 18: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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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내달린 원조 마라토너는 기록을 의식했을까. SNS가 없던 시절 그는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0㎞를 뛰어 페르시아를 물리쳤다고 알린 뒤 쓰러진다. 마라톤의 유래가 이렇듯 올림픽은 본질적으로 현실정치 상황과 거리가 멀지 않다. 압권은 1936년 베를린이다. 히틀러는 나치의 우월성을 선전하려고 모든 걸 동원했다. 스타디움은 유색인종 차별의 현장이 됐다. 사상 초유로 올림피아에서 성화를 채화하고 봉송해 개막식에 점화한 의미는 사라졌다. 3년 뒤 세계는 제 2차대전의 포화에 휩싸인다.

인종 차별 문제로 아프리카 26개국이 보이콧한 몬트리올이나 이후 올림픽이라고 정치에서 비켜가지 못했다. 모스코바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미국과 일본 등 66개국이 불참해 공산권만의 리그가 됐다. LA는 소련의 보복으로 반쪽 잔치를 치렀다. 들여다 보면 88올림픽도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다.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관심사를 돌리려고 유치전에 뛰어든 게 출발점 아닌가.

3수 끝에 개최권을 따낸 평창에 이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내일 역사적 개회식을 하건만 정치의 장으로 부각되지 않을까 우려가 나온다. 세계 6번째로 하계올림픽과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4대 빅스포츠를 개최하는 처지가 머쓱하다. 역대 최대 규모인 92개국 3000명의 선수단이 참가하는 데 세계인의 이목은 경쟁과 감동의 드라마와 더불어 숨막히게 돌아갈 다자외교 무대로 흩어지게 생겼다.

아이스하키 경기보다 궁금한 건 미국과 북한의 움직임이다. 미 펜스부통령은 평창행(行)에 대해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던지러 가는 것"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개회식에는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가 석방된 뒤 숨진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가 함께 한다. 펜스 부통령은 출국 길 트위터에 "웜비어 부부는 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잔혹함을 전 세계에 상기시킬 것"이라고 썼다. "북의 실상이 단일팀에 흐려져서는 안된다"는 말도 했다. 천안함을 찾고 탈북자를 만나겠다며 강한 대북 압박을 벼르고 있다.

우리의 육해공(陸海空)을 열어젖히며 대북 제재를 비웃는 북은 남의 잔치집에서 주인 행세다.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이끌어내더니 '핵(核) 파는 처녀'(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노래폭탄과 미녀 응원단으로 남녘의 혼을 빼겠다는 자신감이다. 마식령스키장으로 우리 선수들을 불러들이고, 개막에 맞춰 초대형 건군절 열병식을 열어 체제 선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개회식은 대외 얼굴마담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는다. 못 미더운지 김정은은 백두혈통 김여정을 내려보낸다. 한반도 운전자 역할을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오빠의 비핵화 해법은 뭡니까?"라고 다그칠 수 있을까.

겨울스포츠와 다자외교 멍석을 널찍하게 펴놓은 대회를 책임지는 건 대한민국이다. 최고의 설질(雪質)을 만든 강추위는 외려 축복이다. 절실한 건 역량 결집이다. 대화만능론에 취한 여권이나 안보위기론으로 '평양올림픽' 카드를 꺼내 든 야권 모두 돌아볼 대목이다. 포스트 평창 차원에서 정치 논란과 갈등을 잠시 접고 성공올림픽이 되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북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냉정함과 끈기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데올로기가 경기장을 짓누를수록 우리 선수들은 감동 스토리를 썼다. 손기정은 베를린에서 식민지의 아픔을 딛고 마라톤을 제패했다. 양정모는 몬트리올에서 해방 뒤 첫 올림픽 금메달을 일궜다. 한국문화와 탁월한 대회 운영 능력을 세계에 알리며 중진국 진입의 디딤돌로 삼은 건 서울올림픽에서였다. 도쿄올림픽(1964년)에서 컬러 TV를 선보여 시장을 지배한 일본처럼 우리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구현하는 계기가 된다면 금상첨화다. 사실은 북핵 시간벌기와 꼼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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