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는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을 지닌 "소확행(小確幸)"이 그것이다. 이 용어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랑겔한스섬의 오후』라는 수필집에 나온다. 수필 첫 구절에서 바지와 `팬티`의 관계를 언급하며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小) 하지만 확(確)고한 행(幸)복의 하나(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생각"하는 하루키의 취향이 퍽 인상적이다. 또한 소확행을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도 부연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볼 때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지만, 세부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관점 혹은 지점들은 다 다르게 마련이다. 필자에게 있어 소확행의 요건들을 꼽으라면 "따스한 햇볕 아래서 봄날의 병아리처럼 꼬박꼬박 졸기", "해질 무렵의 산책길", "오랜 벗과 차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는 담소", "우산도 없이 촐촐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걷기", "한참 동안 멍하고 있기" 등등. 이루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활동(운동)을 싫어하고, 소심하며 좀 게으른(좋게 표현하면 느긋한) 성향을 지닌 필자에게 행복의 조건들이 굳이 거창할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소소한 것들을 향한 대용량의 무한 애정도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만.

안분지족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채근담에 "화간반개 주음미취 차중대유가취(花看半開, 酒飮微醉, 此中大有佳趣)"라는 말이 나온다. 즉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바라보면 좋고, 술은 적당하게 마셨을 때 풍취가 있으니, 그 안에 참다운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일이 지나치면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 제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것을 대할 때에도 적당한 선에서 탐욕스러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미상불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상태, "적당히"의 정도가 얼마나 가늠하기 어려운 말인지 살면서 새삼 깨닫는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무의미한 갈망보다는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잘 지키고 가꾸어 나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 찾기, 일상 속 소확행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채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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