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영된 영화 가운데 14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화제가 된 `신과 함께` 라는 영화가 있다. 사람이 죽어서 중음(中陰)의 세계를 거치면서 살았을 때의 일에 대하여 재판 받는 내용의 영화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업(業)을 짓게 되는데, 두 가지로 구별되는 삼업(三業)이 있다. 첫째는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말로 짓는 구업(口業), 생각으로 짓는 의업(意業)의 삼업이고 둘째는 그 행위의 좋음에 따라 선업(善業), 나쁨에 따라 악업(惡業), 좋음과 나쁨에도 속하지 않는 무기업(無記業)의 삼업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신구의(身口意) 삼업은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투도(偸盜·도둑질)·사음(邪淫·삿된 음행)과 말로 짓는 망어(妄語·거짓말)·양설(兩舌·상대를 이간질시키는 말)·악구(惡口·욕설과 험담)·기어(綺語·이치에 어긋나는 괴변)와 생각으로 짓는 탐(貪·탐욕)·진(瞋·분노)·치(痴·어리석음)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가운데 몸에 관련된 것이 셋이고, 말과 관련된 것이 넷, 생각과 관련된 것이 셋이므로 신3(身三), 구4(口四), 의3(意三)이라고 한다.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십선(十善)을 닦으면 내세에 인간과 천상(天上)의 세계에 태어나게 되고, 십악(十惡)을 많이 짓게 되면 지옥과 아귀(餓鬼)와 축생(畜生)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한다.

영화 `신과 함께` 후반부의 마지막 재판인 7심 재판에서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용서(容恕)를 받고, 염라대왕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다시 환생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용서(容恕)` 라는 단어가 많은 관객들을 눈물짓게 하는 눈물의 씨앗과 같았다.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아들을 용서하는 어머니의 사랑….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많은 관객들에게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일깨워준 순간이었으리라.

`법망경보살계경(梵網菩薩戒經)` 10중대계(十重大戒) 가운데 제 9번째 화내지 말고 참회하면 잘 받아주어라.

"불자들이여, 너희는 스스로 성내지 말고, 남도 성내게 하지 말지니, 성내는 원인이나, 성내는 반연이나, 성내는 방법이나, 성내는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보살은 중생을 착하게 대하여 다투지 말며, 항상 자비로운 마음과 효순하는 마음을 내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일체중생과 마음이 없는 것에 대해서까지 나쁜 욕설을 하고, 주먹과 몽둥이와 칼로 때리고,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고, 그가 좋은 말로 참회함에도 성낸 마음을 풀지 않으면 보살의 큰 죄가 되느니라" 라는 계목(戒目)이 있다.

이것은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큰 죄를 짓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잘못이나 허물은 쉽게 용서하고 합리화 하면서도 남의 잘못이나 허물은 분노하며 용서를 잘 하지 못한다. 또한 억울함이라도 당하게 되면 용서는 고사(姑捨)하고 몇날 며칠을 괴로워하며, 어떤 경우는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가 되어 평생을 가기도 한다. 설사 자기 부모를 살해한 원수라 하더라도 용서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누가 우리 부모를 살해했다고 생각할 때는 아무 원인 없이 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생의 어느 때 살해당한 자기 부모가 어느 누구한테 못할 일을 했거나, 또 그 사람을 죽였거나 하여 인연과보(因緣果報)에 의한 결과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용서하지 않는 나의 마음은 항상 분노와 억울함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라는 말이 있다. 원수를 용서로 갚지 아니하고 원수로 갚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또 원수가 되어 만남이 이어 진다는 것이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가운데 10번째,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께서는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으로 삼으라 하셨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원수가 원수를 낳게 되는 허물을 지적한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누구한테나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자기는 옳고 그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욕을 하고 보복을 하게 되면 서로 원수 된 마음이 풀리지 않고, 풀리지 않으면 그때는 사회적으로도 그만큼 아주 중요한 해악(害惡)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인연에 의해서 만나고 헤어지는 삶 가운데, 용서는 과거의 악업을 소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용서`를 통하여 과거 악업(惡業)의 인연은 모두 끊고, 선업(善業)의 인연을 만들어 가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겠다. 설문 용수사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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