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는 유난히 신나는 학기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취미 생활로 시작한 그림 감상이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이기에 놀랍고 또 감사한 한 학기였다. `서양화를 통해서 보는 새로운 공학`이라는 제목의 강의가 많은 대학원 학부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어 주위의 우려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학기말 포스터 발표로 잘 마무리 된 것이 신기했다.

한 25년 전 해외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염가의 비행기 표를 구하다 유럽의 암스테르담에 학회 시작하기 이틀 전에 도착하게 됐다. 하루의 공짜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하던 차에 묵게 된 작은 호텔 직원의 소개로 반 고흐 미술관을 우연히 가게 됐다.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 이었지만 반 고흐가 네덜란드가 낳은 천재 화가이고, 불우한 생애를 보냈고, 아주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찾은 미술관에서 만난 것은 천재 화가의 유명한 해바라기 그림 보다는 수많은 스케치였다.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연습, 준비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에 평범한 공과대학 교수는 자신의 무지함이 부끄럽기만 했다. 천재는 노력한다! 연습한다! 끊임없이! 그 이후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기 위해 시간이 되면 미술관을 찾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기 위해 조금씩 감상의 깊이를 높이는 노력을 해 보았다. 생각하는 연습을 한 셈이다.

그림 감상 세월의 좋은 곰팡이는 놀라운 선물을 주었다. 그림과 공학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 그래서 그림을 잘 감상하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고 인류를 위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깨달음! 공학은 무엇인가? 자연과학의 원리를 이용해 인간에 유익한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는 것. 인간을 이해하고 자연과학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 아닌가? 이를 위해서는 자연 과학의 원리들을 잘 이해하기 위한 관찰,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화가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관찰하고 연습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림을 통해 그들이 걸어온 연습의 과정을 보고 새로운 그림의 표현법을 감상하는 것은 화가들의 다양한 관찰 대상을 그림으로의 변환 하는 과정을 볼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창조적인 작품을 만드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림이 가지고 있는 변환의 원리, 방법을 이해하고 이 것을 나의 문제에 적용해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함께 그림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하는 공부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아무도 한 적이 없는 강의이니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합치고 나누어서 많이 배우는 소위 `집단 지성`을 이용해 강의를 함께 꾸려가자 설득 했고, 딱딱한 교과목 대신에 좀 게으르게 학점을 따 보려한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됐지만 10명의 대학원생과 40여명의 학부 학생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유혹돼 한 학기를 아주 바쁘게 지냈다. 매 시간마다 학생들의 발표가 약 40분 있었고 나머지 35분 정도가 토론의 시간이었다.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우리 학생들이라 걱정이 앞섰지만, 그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수업 중의 토론뿐만 아니라 온라인 토론의 방도 뜨겁기만 했다. 재미있으니까 토론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표현, 또 다른 스케치 이었다. 완성을 위한!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교육 혁신, 융복합 강의, 토론식 강의에 대한 많은 우려가 한 수업에서 모두 시원하게 풀린 셈이다. 무엇이 이 것을 가능하게 했나? 우선은 모두가 모르는 것을 공부하는 것을 인정한 시작이다. 그래서 각자가 궁금한 것의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했고 말하기 시작했다. 토론에 대한 규칙, 예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공유되기 시작했고 그 다음은 집단 지성이 호모 사피엔스답게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놀라움이었다. 미래는 이렇게 어렵지 않게 함께 열 수 있다는 교훈!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가 그림 감상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좀 비약이 심한가? 층간 소음, 이웃집 담배연기, 신호주지 않고 있다가 재빨리 끼어들기, 내리기 전에 엘리베이터 먼저 타기, 좀 더 과장하면, 정치권의 유권자를 무시한 이전투구, 헬 조선 해결법, 여성 고용의 장벽들 이런 그림들은 어떻게 다시 그려져야 할까? 오늘 내가 하는 행동이 이 그림의 낙서가 되지는 않을까? 설이 다가 온다. 새해 설계를 미술관에서 하면 좋겠다. 김양한 KAIST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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