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이불킥`, 뜬금없는 시트콤 제목같기도 하다. 불현듯 망신당했던 일이나 실수했던 일이 떠올라서 몸 둘 바를 몰라 이불 안에서 발버둥치며 이불을 걷어찬다는 요즘 말이다. 17년 전 유학 초창기 시절, 공연에서 축배의 노래 2중창을 맡았는데 중간에 나오는 약 20초의 왈츠간주가 문제였다. 오페라에선 합창부분이지만 당시 갈라 콘서트에서는 소프라노와 테너 둘 뿐이었고, 간주부분 20초간을 가만히 입 다물고 무대에 마냥 서있을 수는 없으니 걱정만 앞섰다, 연기에 능숙한 사람들은 중간에 왈츠를 추거나 간단한 연기라도 하던데, 연기와 춤 모두 배워본 적도 없는데다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러우니 실제공연에 뭘 한다는 것 자체에 엄두를 못냈다. 공연 직전, 소프라노와 짤막하게 간주 20초에 대한 의견만 교환했다. 웃으며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고 왈츠를 추기로. 연습은 생략. 어떻게든 되겠지,

민망해서 연습도 안한, 아니 못한 왈츠연기가 실제 공연에서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고, 왈츠를 권하며 내민 바들바들 떨리던 손과 어색하기 짝이 없이 지어보이던 웃음의 조합에 객석이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물들던 그 날 깨달았다, 20초라는 시간은 경우에 따라선 찰나가 아닌 영겁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최근 학교공연 연습 중, 비슷한 이불킥 상황을 맞이한 학생을 보게 되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화장실에서 한동안 나오질 않다가 어렵사리 돌아온 그에게 필자는 이렇게 위로했다. "연습이라서 다행이네, 난 공연 때 그랬는걸."

몇 달 후, 무수한 연습을 통해 공연을 훌륭히 마치던 그 학생을 바라보며 대견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창피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악물고 연습을 했을까, 17년 전 필자의 모습이 서려있었다.

얼마 전 차안에서 신호대기 중 횡단보도에 서있던 남자가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다가 혼자 슬며시 `빙그레` 미소를 짓는걸 보았다. 뭔가 흐뭇함이 가득한 미소였다, 아마도 흐뭇한 기억이거나, 부끄럽던 이불킥 사연이 시간을 거쳐 그저 미소 짓게 만드는 추억이 되었겠거니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시간은 이불킥을 빙그레로 바꾸는 힘이 있으니까,

-서필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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