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해서 연습도 안한, 아니 못한 왈츠연기가 실제 공연에서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고, 왈츠를 권하며 내민 바들바들 떨리던 손과 어색하기 짝이 없이 지어보이던 웃음의 조합에 객석이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물들던 그 날 깨달았다, 20초라는 시간은 경우에 따라선 찰나가 아닌 영겁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최근 학교공연 연습 중, 비슷한 이불킥 상황을 맞이한 학생을 보게 되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화장실에서 한동안 나오질 않다가 어렵사리 돌아온 그에게 필자는 이렇게 위로했다. "연습이라서 다행이네, 난 공연 때 그랬는걸."
몇 달 후, 무수한 연습을 통해 공연을 훌륭히 마치던 그 학생을 바라보며 대견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창피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악물고 연습을 했을까, 17년 전 필자의 모습이 서려있었다.
얼마 전 차안에서 신호대기 중 횡단보도에 서있던 남자가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다가 혼자 슬며시 `빙그레` 미소를 짓는걸 보았다. 뭔가 흐뭇함이 가득한 미소였다, 아마도 흐뭇한 기억이거나, 부끄럽던 이불킥 사연이 시간을 거쳐 그저 미소 짓게 만드는 추억이 되었겠거니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시간은 이불킥을 빙그레로 바꾸는 힘이 있으니까,
-서필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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