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집단 세력화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청년이 이 나라 모순을 모두 끌어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문제를 제대로 풀면 나라가 흥하고, 못 풀면 진보 보수 관계 없이 자멸의 뇌관을 건드리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나라의 명운도 청년 문제에 달린 셈이다. 청년은 경제, 사회, 문화, 국방을 아우른다. 어느 하나 청년이 중심이 아닌 영역이 있는가 보라. 문재인 대통령이 청년들의 노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으로 청년들의 심기를 건드린 탓이다. 선수촌을 방문하고 진화에 나섰다. 청년 일자리 대책을 전담할 범 정부 TF를 구성하고 공공 일자리 81만개 만들기에 고삐를 죄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주 52시간)과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를 정원의 3%에서 5%로 늘리기로 했다.

세력화된 2030 청년은 에코붐 세대라 불린다. 이들은 왜 부모 세대와 다른가. 2030의 알고리즘을 이해해야만 시대를 직시할 수 있다. 이들은 2차대전이 끝난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인 이른바 `586세대`의 자식 세대다. 25-29세 인구가 2021년까지 39만 명이 증가하는 에코붐 세대는 상당 기간 이 나라의 독자적 계급세력이 됐다. 이들은 586세대 부모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1980년대 대학에 입학하고 60년대 태어난 세대가 `586`이다. 대학 들어가는데 어렵지 않았다. 20대에 취업해 20대 말에는 결혼한 행운의 세대다. 586 세대가 살았던 80년대 한국경제는 연평균 10%를 성장한 시기다. 일자리는 차고 넘쳤다. 지금은 청년들의 로망이 된 공무원은 `한 번 해볼까` 정도의 선택사항이었다. 수 백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지금의 공시생들의 로망이다. 덕분에 취업 걱정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었다. 압축성장과 신도시 개발에 힘입어 아파트도 손쉽게 장만했다. 먹고 사는 문제 보다 환경 인권 통일 등에 관심이 더 컸다.

1980년 초와 2000년 초 태어난 2030의 에코붐 세대는 부모 세대와 다르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 주로 SNS로 소통한다. 정의나 통일, 평화, 공익과 같은 대의 명분이나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덜하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시대에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나 중심의 개인주의 성향이 짙다. 586은 청년시절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지만 2030은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적 불평등의 희생자들이다. 피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저항의식은 586의 진보와는 다른 개념이다. 불평등 문제다. 존재(처지)가 의식을 규정한다. 2030세대들은 노동시장의 신규 진입자에게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에 분개한다. 진보학자 최장집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중국의 산업화에 의해 값싼 노동력의 무제한적 공급으로 한국과 선진 산업국가들의 고용 자체를 확대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고 성장과 고용을 병행할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무한경쟁과 대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신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려는 젊은 세대 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인구의 노령화가 더해져 청년 일자리가 더 좁아지는 샌드위치 신세를 만들었다. 급기야 새대 갈등은 흡사 계급갈등과 유사한 것이 되었다. 그로 인해 젊은 세대가 독자적인 계급으로까지 운위되기에 이르렀다.

2030 세대 청년들은 공정한 룰에 집착한다.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공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2030세대의 지지율이 80%대에서 60%대로 떨어진 원인이다. 가상화폐 대책 혼선과 남북단일팀 구성 논란이 젊은 세대의 이반을 불렀다. 이 청년들을 어찌하란 말인가? 그렇다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광풍을 방치하거나 한반도 긴장 완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년들을 포용해야 한다. 2030의 고통과 좌절에 공감해야 한다. 절박한 문제에 숙의해야 한다. 불평등 해결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청년들에게 더 많은 노동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로도 얼마든지 집을 장만하고 행복해질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지역의 처지에 맞게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울산시의 `1사 1청년 더 채용하기 운동`, 서울시나 성남시의 청년배당이 있을 것이다. 아산이나 천안과 같은 노동 산업도시의 여건을 반영한 차별화된 청년일자리 정책도 필요하다. `획기적인 것`은 없다. 다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뿐이다. 청년이 미래이기 위해선 단 한순간도 투자를 멈춰선 안된다. 청년외면은 곧 셧다운을 의미한다. 청년의 세력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찬선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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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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