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르도에서 지롱드강을 따라 40킬로 하류에 위치한 뽀이약(Pauillac) 마을은 지리적으로도 또한 오메독 1등급 와이너리 4개 중에 3개(라뚜르, 무똥, 라피트)가 속해 있기에, 메독 와인 지역의 중심지라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7월 연구원의 창의연수 제도를 활용한 보르도 와이너리 투어 첫 날, 뽀이약의 남쪽 동네 바쥬(Bages)에 위치한 샤또 린치바쥬(Lynch-Bages)를 찾아갔습니다. 이후 다른 와이너리 방문을 위해 일주일 동안 지나치면서 계속 만나게 되었던, 린치바쥬로 접어드는 길 모퉁이의 십자가에 매달린 황토색의 가냘픈 예수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린치바쥬는 1855년 메독 와인 등급 선정시 제일 아래인 5등급으로 평가받았지만, 이후 지속적인 발전을 거쳐 슈퍼세컨 와인의 선두로 꼽히는 와이너리입니다. 호사가들은 `가난한 자의 샤또 라뚜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18세기 초 아일랜드 출신의 토마스 린치(Tomas Lynch)가 고대 작은 촌락 이름인 바쥬(Bages) 포도원 주인의 딸과 혼인하면서 샤또 이름이 만들어졌고, 불어 발음은 랭슈바쥬이지만 보다 쉬운 영어식 발음이 혼재된 린치바쥬도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쥬란 명칭이 들어간 5등급 뽀이약 와인으로 크루와제 바쥬(Croizet-Bages)와 오바쥬 리베랄(Haut-Bages-Liberal) 2개가 더 있습니다.

1934년에 쟝샤를르 까즈(Jean-Charles Cazes)가 인수해 35년 동안 린치바쥬의 발전사를 이끌었는데, 양조장을 돌아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정교한 와인제조 기구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그의 손자인 보르도 와인 거장 장미셀 까즈(Jean-Michel Cazes)에 의해 비약적 발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음 와인으로 2011년산 린치바쥬와 오름드뻬즈(Ormes de Pez)를 맛보았습니다. 오름드뻬즈는 까즈가문이 소유한 쌩떼스떼프 와인인데, 며칠 후에 와인너리를 가보니 수 백년 되어 집채만한 느릅나무(Orme)가 있더군요. 2011년 보르도는 여름의 일기불순으로 평년작 수준이기에 시음적기보다 빨리 마셔도 불편함은 덜 했습니다.

린치바쥬는 1990년부터 오메독에서는 드물게 화이트 와인인 블랑 드 린치바쥬(Blanc de Lynch-Bages)도 생산합니다. 지난 24일에 있었던 클래식와인 정기모임에서 마신 2010년 빈티지는 블렌딩된 쇼비뇽 블랑과 세미용의 잘 어울린 조화가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향과 시트러스와 풋사과향의 향긋함에 오일리한 맛의 우아함까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린치바쥬가 와이너리 바로 옆에 운영하는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꼬르데앙-바쥬(Cordeillan·Bages)에서 특이했던 미역버터에 감탄하며 코스요리에 곁들여서 마셨던 2012년 빈티지에서 느꼈던 실망감을 다소 만회 받았습니다. 꼬르데양-바쥬는 레스토랑 소유의 작은 포도원도 갖추어 고랑별로 보르도 와인 품종을 심고 푯말로 표시해 고객들에게 와인품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가장 큰 잎사귀의 메를로는 잎의 굴곡이 만들어낸 형태가 마치 눈구멍만 뚫린 가면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린치바쥬는 갤러리 를롱(Lelong)과 협력하여 1989년부터 매년 유명화가의 전시를 샤또에서 개최하는데, 이번에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의 회고전을 하고 있어서 피에르 알레신스키(Alechinsky)와 안토니 타피에스(Tapies) 등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보르도 샤또들은 문화행사를 하기에도 적당한 공간이어서 와인저장고에서도 공연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쌩떼밀리옹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저녁에 샤또 안젤루스(Angelus) 앞을 지나는데 정장을 차려 입은 많은 사람들이 고급 자동차에서 내려 샤또로 들어가기에, 궁금해서 결혼식이라도 있냐고 물어보니 클래식 공연이 있다는군요.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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