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이 색깔론에 멍들고 있다. 개막식이 코앞이지만 색깔공세는 좀처럼 수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로 삼으려는 문재인 정부는 축제 분위기를 띄우려 하지만 여의치 않은 모양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열기는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의 염원을 안고 3수 끝에 유치에 성공한 평창올림픽이 이념공세에 휘말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듯해 안타깝다.

평창올림픽에 깔린 `붉은 그림자`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이 주도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북한은 대화상대가 아니라 징치의 대상이다. 한미공조와 국제사회 제재 강화로 손발을 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당의 대북 기조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더불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남북 합동 문화공연도 성사시켰다. 대북제제의 약발이 먹히고 있다고 여기는 마당에 올림픽을 통해 북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고 보는 한국당이 이념공세를 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 참가에만 몰두하느라 절차적 정당성 등을 소홀히 했다. 문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세력이던 2030세대들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관련해 제기한 공정성 시비는 파괴력이 적잖다. 비교적 이념에 자유로운 이들 세대에겐 북의 올림픽 참가가 절실한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곧바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에 영향을 미쳤다. 청와대가 화들짝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를 목도한 한국당은 금강산 문화공연 취소와 북한 건군절 퍼레이드 등으로 확전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당이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까지 폄하하며 색깔론을 펴는 것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우선은 6·13 지방선거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6개 광역단체장을 배출하지 못하면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대구를 잃으면 한국당은 망한다고도 했다. 위기의 징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은 10%대의 지지율에서 허덕이고 있다. 유력한 자치단체장 후보로 꼽히는 이들도 한국당의 구애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홍정욱 안대희 장제국 등이 대표적이다. 과연 이들이 한국당이 싫어서 발을 빼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한국당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누구보다도 잘 읽고 있다.

보수세력 결집도 한국당의 노림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보수정치권은 파탄지경이다. 헌정 70여년 대한민국 정치사를 쥐락펴락했던 보수정당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두 차례 정권을 넘겨주기는 했지만 잠시 맡긴 것이란 인식이 강했다. 언제든지 정권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란 자심감이 있었다. 그랬던 보수정당이 이젠 지리멸렬하고 그나마 둘로 갈라졌다. 한축인 바른정당은 국민의당과 통합을 통해 보수정치의 대안세력으로 자리를 잡으려 한다. 이런 차에 한국당에게 북한카드는 여러모로 유용해 보인다.

한국당의 포문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해 있지만 평창올림픽을 위한 남북협력은 고비를 넘기고 있다. 어제는 우리 스키선수단을 태운 전세기가 북으로 향했다. 미국의 독자제재로 인해 시비가 있었지만 평화올림픽이란 대의 앞에 미국이 한발 물러남으로써 해소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을 올림픽으로 유도한 것도 따지고 보면 핵·미사일 억제 프로그램의 하나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남북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천명했다. 평창을 매개로 한 대화와 교류의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북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북미대화와 수교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평화구상이다. 평창올림픽은 우리의 국위와 격조 높은 전통과 문화를 세계에 알릴 기회다. 이제 한국당도 이념의 포화를 멈추고 평창의 성공을 위해 힘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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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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