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본 한비자(韓非子)는 군주와 신하 사이가 신의나 의리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규정했다.

제환공(齊桓公)이 관중(管仲)과 천하경영전략을 논의하면서 끊임없이 견제하고 상벌권을 주지 않는 치밀함을 드러냈지만, 환공을 사로잡은 최측근들의 전략은 생각보다 의외로 단순했다. `한비자` `난일(亂一)`편에 보면 환공이 진기한 맛을 즐겨 찾자 역아(易牙)라는 자는 자기의 맏자식을 쪄서 진상하는 패륜적인 행위를 저질렀으며 수조라는 자는 질투심이 많은 제환공의 마음에 들기 위해 거세(去勢)까지 하면서 그의 곁에 머물렀으며, 위(衛)나라의 공자로서 제환공에게 벼슬했던 개방(開方)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자신의 며칠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고향의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세 사람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는 환공은 이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 중용했다. 이들이 출세를 위해 처신한 것이지 그 내면은 결코 군주를 위한 마음이 털끗만큼도 없는 위험인물임을 간파한 관중이 그 자신의 임종에 즈음하여 찾아온 환공이 "중보(仲父:관중을 가리킴)께서 병으로 불행하게도 세상을 뜨게 되면 과인에게 무엇을 알려주시겠소?" 라는 말을 듣고 관중은 이들의 행위 자체가 패륜적인데, 어찌 제환공을 위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겠느냐면서 내치라는 고언을 했다. 하지만 환공은 관중을 믿지 않고 수조에게 후임 재상 자리를 주었다가 2년 여 만에 모반을 당했으며, 그의 시신에서 구더기가 기어나올 때 까지 자식들조차 몰랐을 정도였다.

수십 년 동안 관중의 도움을 받아 춘추오패가 되었고 천하를 좌지우지한 환공도 자신에게 두 마음을 품은 신하들의 속내를 짐작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배반한 자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군주의 잘못일까? 한비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군주가 (어떤 일을) 싫어한다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싫어할 만한) 단서를 숨기며, 군주가 (어떤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능력 있는 것을 꾸민다. 군주가 하고자 하는 일을 드러내면 신하들은 자신을 꾸밀 기회를 얻는다. 수조와 역아는 군주의 욕망을 이용해 군주의 권한을 침범한 자이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군주가 (자신의) 본마음을 신하들에게 빌려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환난이다. 신하들 의 본마음은 반드시 그의 군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이익을 귀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비자` 중 `이병二柄`)

물론 환공은 임종을 앞둔 관중의 고언을 받아들일 만큼 관중을 뼛속 깊이 믿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관중은 환공에게 권력을 가져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환공은 관중을 견제했으니 말이다.

"군주의 우환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그에게 지배받게 된다.(人主之患在於信人.信人, 則制於人)고 강조한 한비자의 취지는 군주가 냉철함보다는 맹목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믿고자 하는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기야 암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방이 꽉 막힌 동마차를 타고 순행한 진시황도 나이 쉰살에 객사할 때, 자신의 후계자를 맏아들 부소(夫蘇)로 지정하는 유서를 남겼지만, 그 유서를 내팽겨치고 위조한 자는 다름 아닌 진시황이 아꼈던 막내아들 호해(胡亥), 22년 동안이나 권력의 2인자 자리를 부여하면서 중용한 승상 이사(李斯)였던 것이다. 물론 환관 조고(趙高)의 농간과 회유가 두 사람을 음모의 대열에 끼어들게 했지만, 두 사람이 공모해주지 않았다면 그 음모는 실패했을 것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가 오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냉철한 이성보다 어설픈 감성에 의존하고자 하는 나약한 속성이 있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신하가 결코 배신할 줄 몰랐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원망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그 어떤 이기적 행동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이치를 알면 위안이 될 것이다. 물론 신하의 배신보다 더 못난 것은 그런 것을 미연에 알아차리고 대비하지 못한 군주의 어리석음이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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