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되면 지방공무원은 앞 다퉈 서울로 향한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각 기관과 국회 방문을 연례행사처럼 여기는 것이다. 지역별 주요 현안을 새해 예산에 담으려는 이들의 노력은 치열하기까지 하다. 지방공무원이 중앙부처에 가서 손바닥을 비비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총성 없는 예산확보 전쟁`이 과도한 표현이 아니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8대 2 수준이다. 지방에서 내는 세금의 80%를 국가가 가져간 후 자치단체는 다시 그 예산을 받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자치단체가 예산 전쟁에서 풍족하게 한 해 살림살이를 확보할 순 없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한쪽 예산을 늘리면 다른 쪽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느 지역은 사회간접자본(SOC)이 풍부하고, 또 다른 지역은 관련 인프라 구축이 시급해 보이는 이유다. 지역별로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걸지만 희비가 엇갈리는 셈이다.

권력의 중앙 집중은 예산뿐만 아니다.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 광역자치단체건 기초자치단체건 실과를 늘리거나 줄이지 못한다. 인건비도 정해진 만큼 사용하지 않으면 중앙정부로부터 페널티를 부여받는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중앙정부의 권한 집중으로 인해 지역 불균형과 도시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단적인 폐해들이다. 이름만 자치였지 실질적 자치가 가능한 수준의 권한은 지방이 아닌 중앙에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앙의 간섭과 통제로 인해 각 자지단체에서는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자치는 1961년 5.16 이후 멈춰 섰다 1990년 지방자치관계법률의 제정 및 개정으로 부활했다. 1991년에는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의 의회가 구성됐고, 1995년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며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됐다.

지방자치는 지방행정을 그 지역 주민의 힘으로 수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곧 주민의 참여로 이뤄진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공동사회의 정치와 행정을 그들의 의사와 책임 아래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즉 권력과 자원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넘어 주민의 자율과 참여, 책임을 높이겠다는 게 지방자치의 도입 근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해소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더 이상 중앙집권적 국정운영 방식으로는 사회적 위기 해결이 곤란하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 신 성장동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별 특성과 다양성을 살려 조화를 이뤄간다면 국가 경쟁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행인지 최근 들어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들어 시도지사협의회에서 지방분권 헌법개정안을 마련 행정안전부와 법제처,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등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앞서 시도지사협의회 등 지방4대협의체는 지난달 말부터 지방분권 개헌 국민 1000만 인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대전시도 30만 명에 달하는 목표인원을 설정했다. 그만큼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간다는 얘기다.

지방분권 개헌을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삼는 등 새 정부의 의지도 강력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을 위해 제2국무회의를 제도화하고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의 4대 지방 자치권을 헌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개칭하는 내용도 헌법에 명문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투표 확대, 주민소환 요건 완화 등 개헌과 별도로 실질적 지방분권을 확대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하지만 정당 간 이해득실에 따라 국회의 개헌 논의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와 지방분권 개헌을 요구하는 전국 지자체의 요구대로 6.13 지방선거와 함께 지방분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늦어도 내달 말까지 개헌안이 마련돼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방분권 개헌은 특히 국민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정치권의 당리당략으로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맹태훈 취재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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