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의 경제 시스템은 치유되지 못한 채 병들어 있다. 질병의 이름은 `금융화`다. 금융화는 금융과 금융적 사고방식이 기업과 경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게 돼 버린 현상을 뜻한다. 이 시스템 속에서 `만드는 자(maker)`들은 `거저먹는 자(taker)`들에게 예속 돼 있다. 만드는 자란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다. 거저먹는 자는 고장 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해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로,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 금융 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힌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까지 포함된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는 금융화를 초래한 월가와 워싱턴의 밀월 관계, 부자와 대기업에만 유리하도록 설계된 세법, 1970년대 말부터 누적된 여러 정책적 실책 등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이를 토대로 금융과 실물 경제 사이의 힘의 균형을 되찾을 것을 역설한다.

우선 금융화를 주도하는 각종 금융업체들이 어떤 수법을 동원해 실물 경제의 자산과 잠재적 가치를 갉아먹는지를 파헤친다. 거저먹는 자의 대표 격이라 할 만한 시티그룹 등의 대형 은행들은 규제 완화에 힘입어 탐욕스럽게 몸집을 키워 온 끝에 이제는 경제적 안정을 해치고 성장을 저해하는 말썽꾼으로 변모해 버렸다. 이른바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애플이나 듀폰 같은 대기업을 공략, 단기적 주가 상승만 추구하도록 압박하면서 차익을 실현하고 있다. 그 탓에 정작 기업의 혁신과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연구개발 투자는 줄어들면서 장기적 성장 동력이 고갈되고 있다.

또 골드만 삭스를 비롯한 대형 투자은행은 자신들의 막대한 정보력과 자금을 이용해 석유나 금속 등의 상품시장을 조작함으로써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주택시장을 좌지우지하며 지역사회를 파괴한 사모펀드, 민영화된 퇴직연금 제도를 이용해 연금 가입자들에게서 야금야금 수수료를 뜯어먹는 뮤추얼 펀드의 실태를 고발한다.

이와 함께 금융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본래의 사업보다 돈놀이에 열중하는 기업들의 민낯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용 절감만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며 품질을 외면하다가 큰 위기를 겪은 제너럴 모터스가 대표적이다. 마치 은행처럼 인수합병이나 소비자 대출 등 각종 금융 활동을 방만하게 벌이던 중 2008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제너럴 일렉트릭 등도 이에 해당된다.

저자는 이런 식의 금융 중심적 세계관이 미래의 경영자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에도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말한다. MBA로 상징되는 미국의 경영 교육이 어떻게 해서 실제적 경영 기법보다는 그저 대차대조표 숫자를 주무르는 데 집중하게 됐는지 알아본다. 현행 세법이 거저먹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노동자의 근로 소득보다 부유층 투자자의 자본 소득에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되며, 각종 대출에 뒤따르는 세금 공제 혜택은 기업과 시민들이 저축을 하기보다 부채를 키우도록 부추긴 다는 것이다.박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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