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엄동설한의 겨울을 지날 무렵이면 봄날의 일본 간사이 지역 나라(奈良)가 더욱 그립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백제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있어 발 닿는 곳곳마다 고향 품 같은 정감이 넘쳐 나는 그곳에 가면 곳곳에 호수가 있다. 호수 한 가운데 정자가 있어 나그네의 마음을 사정없이 유혹한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공원이나 산비탈에 가보면 수많은 노루 떼가 무리 지어 유유자적 한다. 사람이 접근해도 개의치 않고 성큼 다가와 다정다감 무언의 대화를 건넨다. 그곳은 흡사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

일본 간사이 지역 관문인 오사카에서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나라(奈良) 현 일대 곳곳을 거닐다 보면 뜻밖의 운치와 정감이 마음 깊이 스며든다.

도심 속에서 자아를 상실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곳에서 4박 5일 정도 머물면 참 좋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유구한 역사의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이곳을 둘러보는데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라도 문제없다. 그저 중요한 한자음과 그 뜻을 알고 있으면 된다. 중요한 관광명소에는 한글 이름까지도 친절하게 병기돼 있기에 곳곳의 명소들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저녁 무렵 거리를 거닐다가 구수한 노랫가락 소리가 들리는 곳에 들어가 현지인들과 어울려 이심전심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고독한 저녁시간을 보내기에도 부담 없고 편안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루하루의 분주한 일상사에서 탈피해 지나온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에 좋은 여행목적지이다.

백제 고도인 충남 부여가 고향인 필자는 그곳을 여행하다 보면 고향 분위기와 여러모로 닮았다는 생각에 깜짝 놀란다. 실제로 그곳에는 삼국시대 옛 백제문화의 향취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나라는 일본 간사이 지역 관문 오사카(大阪)와 함께 먼 옛날 서양문화와 불교문화가 유입돼온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다. 일본에 전래된 불교문화만 하더라도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과 한반도를 경유해 오사카·나라 일대에 처음으로 전래돼 꽃을 피웠다. 아울러 고구려·백제·신라 당시 삼국시대의 선진문물과 기술과 학문이 나라 일대에 전해져 뿌리를 내리고 번영을 구가했다. 고대 중국과 한반도 등의 대륙에서 선진 기술과 문물을 가지고 일본 열도로 이주해온 사람들을 일컫는 도래인(渡來人)들이야 말로 일본 고대국가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문화유산이 즐비한 일본 천년 고도인 그곳은 언제나 질리지 않고 아늑함과 평안함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고대 일본인들이 중국과 한반도에서 열심히 배워 율령정치 체계를 갖추었던 당시 행정 심장부가 바로 나라다.

역사적으로는 일본열도에서 고대국가인 아스카(飛鳥)시대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서기 710년에 헤이조쿄(平城京)라 불리는 일본 최초의 대도시가 바로 오늘날 나라(奈良) 일대에 들어섰다. 중국 당나라 시대 수도 장안(長安)을 본떠서 만든 도시로 바둑판처럼 도로가 잘 정비돼 있던 헤이조쿄는 710년부터 784년까지 75년 동안 일본 왕조의 수도로 번영을 구가했다.

당시 일본은 숭불정책(崇佛政策)을 실시해 수도 나라 일대에는 수많은 사찰이 속속 건립됐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삼국시대 특히 백제 불교문화의 영향을 상당부문 받아 오늘날 나라 일대 문화유적지 곳곳에 그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라 현의 여러 관광명소 중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조 건축물인 호류지(法隆寺)와 도다이지(東大寺)가 가장 유명하다. 실제로 당시 우리나라(백제) 건축가들이 그곳에 들어가 건립한 건축문화재들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더욱 정감 넘치는 곳이 바로 나라다. 신수근 자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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