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없으면 정상적 사회생활이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데 최근 아이폰 이용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이폰 이용자들이 애플 측의 의도적인 성능 저하를 의심하며 애플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집단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의회까지 나서서 `아이폰 게이트`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아이폰 성능저하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가 40여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아이폰 시리즈가 우리나라에 1000만대 정도가 판매됐다고 하니, 그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피해구제절차는 언론에서 말하는 집단소송제도가 아니라, 단지 공동소송제도에 불과하다. 공동소송은 하나의 소송절차에서 여러 사람의 원고 또는 피고, 즉 다수당사자가 관여하는 소송형태를 말한다. 따라서 다수의 피해자들이 각자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이를 병합하는 형태로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소를 제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별도로 소송을 제기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오늘날 대량생산된 제조물로 인한 피해 유형은 `소액·다수`인 경우가 많은데,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사업자에 비해 정보의 격차 등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에 있어서 필수적인 인과관계의 증명도 거의 불가능해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이용자가 집단으로 소를 제기해 승소한 경우 그 소송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이용자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집단소송제도는 소비자피해구제에 매우 효율적이다. 소송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제조물 등의 이용과정에서 다수의 피해자가 생겼어도 `집단소송`의 제기를 통한 구제가 불가능하다. 단적으로 지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생명을 잃는 비극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제도를 활용할 수 없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17건의 집단소송법안이 발의됐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고 모두 폐기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철이 되면 대부분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공약(公約)으로 내세웠지만, 국회가 번번이 입법을 태만히 해 공약(空約)으로 만든 것이다.

요즘과 같은 세태에 소비자는 더 이상 `왕`도 아니지만, `봉`이 되어서도 안 된다. 소비자기본법상 집단분쟁조정제도나 단체소송제도가 있다하더라도, 전자는 강제력이 없고 후자는 사후적 피해구제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동일한 원인으로 다수의 피해자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구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소비자주권의 확립을 위해 조속히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현재 9건의 집단소송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인데, 이들 법안의 내용을 보면 그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과연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소비자들을 제대로 구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2005년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됐지만, 12년이 지난 2017년에서야 도이치은행의 주가연계증권(ELS) 시세조종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본안 판결이 나왔을 뿐이다. 이처럼 활용이 저조한 이유는 소송허가제와 변호사강제주의와 같은 요건의 엄격성에 기인한다. 따라서 현재 각 법안들이 담고 있는 이들 요건에 대한 삭제 또는 완화가 필요하고, 아울러 실질적 피해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의 소송비용 지원에 대해도 명시적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될 경우 소송 남발로 기업활동이 위축되어 국가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는 참으로 무책임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이득을 챙긴 `옥시`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서도, 이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합당한 배상대신 대형 로펌을 앞세우거나 대학교수를 매수해 증거를 조작하는 것과 같은 범죄 행태에 대해 정부와 국회가 수수방관한다면 어찌 우리가 `공정사회`를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맹수석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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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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