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부활 전야 미사 때 읽게 되는 구원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구원사에 대한 묵상을 나누고자 한다. 성경 말씀 안에서 가장 큰 위로와 힘을 받는 나의 묵상을 통해 누군가 위로와 힘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첫 번째 묵상 나눔을 시작한다.

성경의 첫 책 창세기는 한 처음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이야기로 시작된다. 창세기는 창조되기 전의 상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모든 것이 꼴을 갖추기 전에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었다. 하느님의 은총이 닿기 전의 여러 가지 부족함과 한계, 그리고 죄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위에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통해서 이제 어둠과 심연에 질서를 지어주시고 생명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하느님의 영이 닿았을 때 어둠과 심연이 질서를 갖추며 온갖 생명을 품었듯이, 우리가 성령과 만날 때 내 안의 훼손된 하느님 모습의 복원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 앞으로의 창조 과정도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도식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모든 존재 이전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 모든 존재는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라 존재와 그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것은 창조 과정에 대한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증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적인 고백이다. 어긋남이 없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말씀은(이사 55,11) 모든 존재들의 존재이며, 우리의 길·진리·생명이다(요한 14,6). 창조 도식에 따라 창조가 이루어진 뒤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이 좋았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좋은 것이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다. 무엇을 해서 더 좋거나 무엇을 못해서 덜 좋지 않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좋은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확증을 받은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한계, 그리고 죄를 넘어 모든 것을 좋게 만드실 것이다.(요묵 21~22장)

각 창조 과정의 마지막 부분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날이 지났다.` 이것은 창조 과정의 마지막 구절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거룩함은 쉬는 것(안식)이다. 여기서의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 창조의 원리인 하느님의 뜻과 말씀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겨 그것과 온전히 일치한 상태이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신(요한 5,3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누리시던 영광(거룩함)과 더불어 우리가 거룩함과 안식에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십자가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새 계명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자 모델이다. 십자가의 사랑을 살기 위해 내 생각과 가치관, 욕심 등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참다운 거룩함과 안식에로 나아갈 수 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신 뒤 인간에게 역할을 주신다. 그것은 모든 생명들에게 번식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말씀(창세 1,22)에 따라 그들의 행복과 번성을 위해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다운 다스림, 즉 권위는 봉사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 창조에서 시작되었고 십자가상의 죽음에서 절정에 이른 하느님의 만물을 위한 봉사는 종말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우리가 이 봉사에 협조할 때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의 모습대로 살아가게 된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신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성경과 역사는 앞으로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 그리고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이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보여줄 것이다.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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