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막 귀국하고 학생을 지도할 때의 일이다. 감기에 잔뜩 걸려 온 학생에게 성악하는 사람이 칠칠치 못하게 감기나 걸리냐고 질책하자 대뜸 성악을 시작하고 나서 비염이 더 심해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필자가 학생이었던 시절 바라보던 성악가들의 모습은, 찬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스카프와 목도리로 중무장하고, 감기 걸린 사람들 근처에는 얼씬안하고, 목에 좋다면 뭐든 챙겨먹는 유난스러운 모습이었다, 보기에 꼴불견일 정도로 `귀하신 몸`을 챙기기 바빠보여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도 성악을 시작한지 27년, 언젠가부터 늘 컨디션관리가 최대의 화두이다. 중요한 오디션이나 연주 때 감기나 컨디션 난조로 어려움을 겪거나 목표한 결과를 이루지 못한 경험들이 쌓여, 어느 덧 필자도 찬바람이 느껴지면 가능한 모든 예방책을 동원하며 유난 떠는 부류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유학 시절, 오디션을 독감으로 망치던 날 필자의 선생은 말했다. "필, 컨디션 관리도 실력이고 그로 인해 공연에서 네가 부진하다면 너랑 친하다는 관객에게라도 절대로 면죄부가 될 수 없단다. 넌 그 사람이 지불한 티켓 값에 상응하는 것을 언제나 보여줘야 하고 그게 바로 프로의 세계란다."

취미로 음악을 한다면 컨디션 난조는 이해하고 넘어갈 문제지만, 그 일을 자신의 업(業)으로 삼는 업자(業者)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생각해보면 투수나 축구선수가 아니라면 팔꿈치 토미 존 수술이나 허벅지 햄스트링 부상을 일반인이 겪을 일은 희박하다. 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손목 터널 증후군에 시달리고, 가수들과 아나운서들은 감기기운 있으면 목 감기로 넘어가기 일쑤다, 턱에 괴는 현악기주자들은 목 근육 통증이나 접촉성 피부염이 많고, 입술의 접점이 중요한 금관악기 주자들은 입술이 붓는 니켈 알러지도 많다, 어떤 방면의 전문가일수록 그 직종에 관해 직업병이 있는 셈이다. 남들보다 전문적인 부분이 오히려 약점이 되는 역설, 많이 쓰는 만큼 많이 닳는다는 분필이론이다.

주위를 살펴보자. 그들의 전문영역에서 그들의 고충이 보일 것이며 그 전문성을 위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보인다, 세상일이 늘 그렇듯. 서필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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