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희미하게

새벽까지 희미하게
새벽까지 희미하게
"인도나 동남아시아 풍의 화려하고도 조악한 꽃무늬 여름 원피스들이 놀랍도록 싼 가격표를 붙이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곧 지나가버릴 계절의 옷들. 늙거나 젊은 여자들이 리어카 앞에 붙어 옷을 고르고 있었다. 자신의 생에서 내년 여름이라는 시간이 100퍼센트 있을 거라는 그 확신이 놀라워 그녀들을 한동안 바라보다 파란색과 꽃분홍색 옷이 걸린 옷걸이를 빼 들고는 제 몸에 하나씩 대보았다." -본문 중

내년 여름이 반드시 있을 거라 확신하고 철 지난 여름원피스를 고르는 사람들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금희를 통해 "다음이란 건 없다"고 소설가 정미경은 말한다. 정미경은 이 시점부터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난 해 1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정미경이 유독 그리워진다. 정미경의 유고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가 고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됐다. 이 책은 소설집으로 묶이지 않았던 근작 소설 5편과 고인의 동료인 소설가 정지아·정이현, 유족 김병종 화백이 그리움을 담아 써내려간 추모 산문 3편을 함께 묶었다.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이기도 한 표제작 `새벽까지 희미하게`는 `창작과비평` 2016년 여름호에 발표했던 단편소설로 작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이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 `송이`는 다양한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좀 더 윤택한 삶으로 건너가기 위해 송이의 성과를 가로채고 모른척했던 `유석`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불행에도 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송이는 인상적이다. 밤의 놀이터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뜬금없고도 마구잡이로 쏟아놓았던 시간들이, 당시 가장 힘든 시간을 지니고 있던 유석에게 힘이 됐음을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대화 아닌 대화로도, 서로를 알지 못하고 스쳐가는 관계로도, 거짓말에도 위로가 스며들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 한 어긋남을 작가는 보여준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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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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