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야(White nights)는 1985년 처음 개봉했다. 당시 국내에는 생소한 발레를 소재로 했지만 의외로 큰 흥행을 거뒀다. 영화 줄거리는 냉전시대 미국으로 망명한 소련의 발레가가 비행기 고장으로 소련 영토에 불시착했다가 갖은 고초를 겪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제목인 백야는 고위도 지역에서 여름 동안 밤에도 어두워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빛과 어둠이 서로 영역다툼을 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는 냉전 종식 전후의 시대상과 닮아 있다.

당시 미국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헐리웃 영화 중 하나다. 어찌보면 식상한 주제지만 소재면에서 감미로운 클래식과 팝송, 러시아의 우아한 발레와 미국의 신나는 탭댄스의 조화가 매력적인 영화다. 주연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실제 볼쇼이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발레가로 1974년 캐나다 공연 중 망명해 미국에서 정착한 인물로 더욱 화제가 됐다.

바리시니코프가 의자를 타고 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각인돼 있다. 한 스포츠웨어의 국내 광고에서 이 장면을 패러디한 배우 이종원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교실에서 이를 흉내내다가 다친 중고등학생들이 부지기수고 부숴먹은 의자도 허다하다. 사실 영화보다는 주제곡인 라이오넬 리치의 `세이 유 세이 미(Say you Say me)`가 더 유명하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싹쓸이한 이 노래의 멜로디는 영화를 본 적 없는 이들의 귀에도 익숙할 정도다.

또 하나 인상 깊은 장면은 주인공이 KGB 요원들을 등 뒤로 하고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 들어갈 때다. 대사관은 치외법권 지역이다. 기세등등하게 쫓아가던 KGB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총을 거두며 돌아서고 만다.

치외법권을 뒤집어보면 무법지대라는 말과 통한다. 지난해 10월 대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교통사고로 어린 딸을 잃은 한 소방관 부부가 쓴 호소문이 최근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호소문은 도로교통법의 허점에 대해서도 말한다.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는 사유지라는 이유로 도로교통법 12대 중과실에 포함하지 않아 오히려 도로보다 더 위험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맹점 탓에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 교통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단독주택과 같은 개인적 공간이라면 도로교통법의 잣대를 굳이 들이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차들의 통행이 빈번한 공동주택 단지는 도로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취재2부 이용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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