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설명드렸던 북부론 와인의 대표 마을들은 가파른 지역이라 포도 재배면적이 넓지 않습니다. 꼬뜨로띠가 191 헥타아르(ha), 에르미따쥬는 126 ha에 불과합니다. 1855년 보르도 와인 등급 심사에서 오메독 와인과 함께 선정된 쏘떼른(Saurternes) 와인 27개(1등급/11개, 2등급/15개 포함) 중에서 유일하게 특1등급으로 선정된 샤또 디켐(d`Yquem)은 에르미따쥬 전체 면적보다도 넓은 130 ha의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7월 16일 날씨가 좋아 가을처럼 파아란 하늘 아래, 주말임에도 우리 일행만을 위해 특별히 방문 일정을 허락해준 샤또 디켐을 찾아 보르도 남동쪽 40 km 정도 위치한 쏘떼른 마을로 떠났습니다. 구글맵으로 디켐 근처에 도달해서 약간 올라온 언덕 위의 멋진 샤또는 보이는데,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서 입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울타리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겨우 쪽문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네요. 담당자를 만나자마자 물어 봤더니, 모든 표지판들이 도둑을 맞아서 그렇다는군요! 워낙 유명한 샤또이다보니 손쉽게 떼어 갈 수 있는 표지판은 재설치를 해도 금방 또 사라져서 아예 포기했다고 합니다. 방문을 마치고 정문을 나서는데, 육중한 철문을 달고 있는 대리석 기둥에 유일하게 새겨진 글자(Yquem)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보트리시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로 일컬어지는 귀부병을 활용하는 쏘떼른 와인의 뒤늦은 수확 방식엔 정설은 아닌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세 시대 이 지역의 영주에게 포도수확 시기 결정의 권한이 있었는데, 수확전 떠난 영주의 여행이 늦어져 수확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포도가 과숙성 돼 시들고 말라 버려 포기하려다가 와인을 담갔는데, 아주 향기롭고 달콤한, 영롱하고 맑은 와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쏘떼른 지역은 가론강의 지류인 시롱(Ciron)강의 우안에 위치하는데, 가을 아침에는 랑드(Landes)숲과 시롱강의 영향으로 차가운 안개로 덥혀 포도알에 수분이 맺히고, 낮이 되면 햇볕에 의해 수분이 증발하여 귀부병이 잘 발달할 여건이 됩니다.

샤또 디켐은 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입니다. 16세기 말 이 지역의 영주이었던 자끄 소바쥬(Jacques Sauvage)로부터 시작돼 소바쥬 가문의 소유로 이어 오다가, 19세기 초에 열정적인 젊은 미망인 프랑스와즈 조세핀 드 소바쥬가 현대와 같은 빈티지마다 적어도 여섯 번의 선별 작업을 거쳐 귀부병에 걸린 포도만을 골라내는 수확 방법을 확립했다고 합니다. 포도나무에 따라 귀부병의 수준이 다르기에, 일일이 확인해 손으로 수확합니다. 응축이 늦을 경우 9월에 시작된 수확이 12월까지 지속되기도 합니다. 디켐은 보통 세미용 80%와 소비뇽블랑 20%를 블렌딩합니다.

일차발효(대형탱크)는 오크 또는 시멘트를 사용하는 보르도 와이너리와는 달리디켐은 스테인레스 스틸통을 사용합니다. 2차 발효 중인 지하 오크통 저장실로 내려가는 원형 계단의 가운데에 대형포도알들을 형상화해 매달아 놓은 조각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와인 시음실 한쪽 벽면은 빈티지별 와인병을 위에서 찍은 사진들로 장식하였는데, 동그란 원마다 와인 생산 연도가 적혀 있고 와인색도 연도별로 달라 시기가 지날수록 짙어집니다. 우리는 2010년 빈티지를 시음했습니다.

과장해 표현하면,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디켐 와인 한 잔이 나온답니다. 선별된 포도알로 정성껏 만들어서 맛이 훌륭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유명 범죄소설 작가 프레데릭 다르(Frederic Dard)는 "모차르트 연주 뒤에 모차르트의 여운으로 충만한 것처럼, 디켐을 넘기고 난 후에도 디켐의 여운이 입안에 계속 된다"고 표현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디켐의 여운을 공작새 꼬리의 펼침과 같다고도 합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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