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국가권력이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 보여주는 광기(狂氣)에 대한 고발일 수도 있다. 그러한 광기(狂氣)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또 다른 권력의 광기(狂氣)에 대한 준엄한 경고가 되고 있는 사례로서 독일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소개한다.
마지막 총격병 사건으로 알려진 1989년 2월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가 국경수비대의 총격으로 사망한 동독 청년 크리스 귀프로이(Chris Gueffroy) 사건이 떠오른다. 그 당시 현장을 경비하고 있던 4명의 경비병들은 국경을 넘어 탈출하려는 자가 있을 경우 발포를 해서라도 탈주자를 막으라는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 취소 때까지 유효한 명령)`가 내려져 있었다. 그 날의 사살은 그 명령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었다. 이 사건 발생 9개월 후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그 이듬해인 1990년 10월 3일 마침내 동서독이 통일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후 통일 독일의 검찰은 통일 전 베를린 국경에서 발생한 탈출 기도자의 사살 사건을 조사하고, 연루된 경비병들과 군 지도자들을 기소했다. 4명의 경비병들은 살인 혐의로 기소돼 사건 이후 3년여 만인 1992년 1월 말 1심 선고 재판이 열렸다.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 측은 "잘못된 권력의 광기"에 대한 유의미한 경고가 될 수 있다는 점의 논거를 제시했다.
"이 사건 범죄자들은 상급자의 지시명령을 단순히 샐행한 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살인 범죄에 가담해 직접 살인행위를 저지른 자들인 만큼 지시명령권자와 관계없이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고 옳은 일이다. 이 사건에서 `살인` 명령을 내린 최고 책임자를 비롯한 지휘선상의 책임자들에게 살인과 관련된 상응한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와는 별도로, 명령을 실행한 최하급 실행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살인행위에 가담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가권력에 의한 반인권·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도 배제되고 형벌불소급의 원칙도 배제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법의 원칙이 되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4명의 경비병 중 사살한 장본인으로 확인된 경비병은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사격을 한 경비병은 발사한 총알이 빗나갔지만 사살 의도가 있었으므로 `선고 유예`를 선언했다. 땅바닥에 사격한 경비병과 체포 목적으로만 사격하라고 말한 경비병은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담당 자이델(Theodor Seidel)판사는 "합법적인 것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기소된 경비병들은 동독의 법이 아니라 양심에 따랐어야 했다고 판결의 전제를 선언했다. 자이델(Theodor Seidel)판사는 판결 마지막에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영화 속 고문전문가 이모씨는 199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시대 상황에서 고문은 일종의 예술이자 애국 행위였다"면서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 같이 할 것"이라고 밝혀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30년 전 고문치사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권력의 광기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준엄하지 않을 경우 영화 `1987`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 문병선 서원대 융합보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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