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중심으로 자행된 권력의 광기(狂氣)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정당화되고 합리화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여 얼마나 부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가를 고발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애국이라는 의미가 상반되게 대립한다. 고문치사를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으니 심장마비가 사인(死因)이다"라고 강변하는 애국과 고문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무엇이 애국이냐?"라고 절규하는 한 젊은이가 생각하는 애국은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영화는 국가권력이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 보여주는 광기(狂氣)에 대한 고발일 수도 있다. 그러한 광기(狂氣)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또 다른 권력의 광기(狂氣)에 대한 준엄한 경고가 되고 있는 사례로서 독일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소개한다.

마지막 총격병 사건으로 알려진 1989년 2월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가 국경수비대의 총격으로 사망한 동독 청년 크리스 귀프로이(Chris Gueffroy) 사건이 떠오른다. 그 당시 현장을 경비하고 있던 4명의 경비병들은 국경을 넘어 탈출하려는 자가 있을 경우 발포를 해서라도 탈주자를 막으라는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 취소 때까지 유효한 명령)`가 내려져 있었다. 그 날의 사살은 그 명령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었다. 이 사건 발생 9개월 후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그 이듬해인 1990년 10월 3일 마침내 동서독이 통일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후 통일 독일의 검찰은 통일 전 베를린 국경에서 발생한 탈출 기도자의 사살 사건을 조사하고, 연루된 경비병들과 군 지도자들을 기소했다. 4명의 경비병들은 살인 혐의로 기소돼 사건 이후 3년여 만인 1992년 1월 말 1심 선고 재판이 열렸다.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 측은 "잘못된 권력의 광기"에 대한 유의미한 경고가 될 수 있다는 점의 논거를 제시했다.

"이 사건 범죄자들은 상급자의 지시명령을 단순히 샐행한 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살인 범죄에 가담해 직접 살인행위를 저지른 자들인 만큼 지시명령권자와 관계없이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고 옳은 일이다. 이 사건에서 `살인` 명령을 내린 최고 책임자를 비롯한 지휘선상의 책임자들에게 살인과 관련된 상응한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와는 별도로, 명령을 실행한 최하급 실행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살인행위에 가담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가권력에 의한 반인권·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도 배제되고 형벌불소급의 원칙도 배제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법의 원칙이 되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4명의 경비병 중 사살한 장본인으로 확인된 경비병은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사격을 한 경비병은 발사한 총알이 빗나갔지만 사살 의도가 있었으므로 `선고 유예`를 선언했다. 땅바닥에 사격한 경비병과 체포 목적으로만 사격하라고 말한 경비병은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담당 자이델(Theodor Seidel)판사는 "합법적인 것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기소된 경비병들은 동독의 법이 아니라 양심에 따랐어야 했다고 판결의 전제를 선언했다. 자이델(Theodor Seidel)판사는 판결 마지막에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영화 속 고문전문가 이모씨는 199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시대 상황에서 고문은 일종의 예술이자 애국 행위였다"면서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 같이 할 것"이라고 밝혀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30년 전 고문치사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권력의 광기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준엄하지 않을 경우 영화 `1987`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 문병선 서원대 융합보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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