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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어느 외과의사의 은사(恩師)

2018-01-17 기사
편집 2018-01-17 0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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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간호사였다. 오전에 내시경으로 용종을 떼어낸 후 귀가한 환자가 갑작스레 복통이 발생했다며 병원으로 전화를 했단다. 간호사가 일러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환자와 통화한 나는 장이 천공됐음을 직감했다. 환자와 나는 각기 병원으로 향했다.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정도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사로 넘길 상황은 아니었다. 서둘러 촬영한 엑스레이 상 장이 천공되었음을 시사하는검은색 음영의 가스가 우측 폐 하단에서 관찰되었다. 장천공이 명백했고 서둘러 수술을 하는 것 외 다른 치료법은 없었다.

수술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환자의 복부에 작은 구멍을 뚫은 후 복강경기구를 삽입했다. 가능한 한 상처를 적게 만들고 수술 후 회복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선택한 수술방법이었다. 장을 뒤져 바늘구멍 크기의 천공부위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천공이 있을 거라 예상되는 간만곡부는 다른 부위에 비해 접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환자의 복부가 나만큼이나 넉넉한 탓에 수술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결국 메스로 복부를 절개해 육안으로 천공부위를 확인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개복 후 대장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천공부위를 찾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기를 한참, 마침내 바늘구멍크기의 천공부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바늘 꿰맨 후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새벽 3시. 1시간 가량 회복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지켜본 후 나는 숙소로 향했다. 피곤이 몰려왔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밤새 환자가 누워있는 병실을 들락거렸고 어느새 아침햇살이 병실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장의 일부분을 절단하고 이어준 수술이 아니라 달랑 두 바늘 꿰맨 수술이었기에 환자의 회복속도는 빨랐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이유로 환자의 식사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소변줄에다 가스가 나오기까지 환자가 끼고 있어야 했던 콧줄,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액들. 환자가 감수해야 했던 불편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거기다 개인사업을 하던 환자가 사업장을 비움으로써 입게 된 경제적 손실. 용종을 떼어내는 시술을 하자면 천공이 생길 수도 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시술을 집도한 의사의 마음이야 어디 그런가. 환자가 입원해 있는 내내 환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환자의 가족들을 대하기가 여간 죄송스러운 게 아니었다. 느닷없이 그런 상황과 맞닥뜨린 환자나 그의 가족이라면 내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만도 하건만 이상스럽게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내가 죄송하다고 하면 환자나 그의 가족은 그런 소리 말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나섰다. 어디 그뿐인가. 환자는 이 참에 푹 쉴 수 있는 기회를 준 내게 감사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환자가 내게 불만을 토로한 것이라곤 연말이라 술자리가 많은데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어 아쉽다는 것뿐이었다. 환자와 지내는 동안 그가 나만큼이나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원한 환자로부터 연초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이 담긴. 이렇듯 고맙고 기쁠 수가. 매해 이렇듯 새해를 맞을 수 있다면. 외과의사로서 메스를 들고 지낸 세월만도 훌쩍 20년이 넘었다. 내게 메스를 쥐어주며 이것저것 가르쳐주던 대학병원 은사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은사님들께서 들으면 서운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참에 내게 또 다른 은사님이 계심을 실토해야겠다. 다름 아닌 환자라는 이름의 은사(恩師). 외과의사로서 걸음마를 떼고 몇 발짝 옮겨놓았을 수는 있었었지만 내게 신뢰와 격려를 아끼지 않던 환자라는 이름의 은사가 없었다면 지금껏 내가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을까? 오래 전에 메스를 집어 던지고 주저앉았지 싶다.

술을 마실 수 없다며 입원기간 내내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하며 내게 웃음을 건네던 그 환자의 얼굴이며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조만간 술자리를 갖자며 그와 약속한 그날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남호탁 수필가·예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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