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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영어 교육에 대한 성찰

2018-01-12기사 편집 2018-01-12 00: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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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3월부터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말라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1,2학년이 영어 방과후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것에 맞추라는 얘기라 한다.

무릇 유용한 지식을 배우지 말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영어가 중요하다고 모두 얘기하는 세상에서 이런 조치는 우스꽝스러울 뿐 아니라 크게 해롭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 듯하게 들리는 논거를 지녔다. 따라서 먼저 그것의 논거를 살펴서 논파해야 한다.

영어 교육에 비우호적인 주장들은 영어가 한국어와 경쟁한다고 전제한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근본적 이유는 영어가 세계어라는 사정이다. 다양한 민족어들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영어로 소통한다. 즉 세계어인 영어와 민족어들은 보완적이다. 실은 민족어들의 효용은 세계어에 의해 증폭된다. 영어를 통해 세계로 퍼지지 않으면, 민족어를 통한 활동들은 국내에 머물게 된다. '한류'라 불리는 황동들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영어 사용의 혜택이 워낙 크고 분명하므로, 영어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처음 언어를 배울 때 영어와 한국어가 경쟁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영어는 언어적 정체성이 확립된 뒤에 배워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는다. 이번 논란의 뿌리인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교육 금지는 그런 처방을 따랐다.

그런 처방은 일상적 경험과 맞지 않고 언어학의 정설과 어긋난다. 아이들은 언어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태어난다. 그리고 둘레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배워 모국어로 삼는다. 이처럼 선천적 능력이 환경에 맞춰 발현되는 과정은 각인(imprinting)이라 불린다. 동물들의 새끼가 어미를 알아보는 것이나 연어가 태어난 하천을 기억하는 것도 각인 덕분이다.

각인은 일정 기간만 작동한다. 그래야 올바른 정보가 입력될 수 있다. 그런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는 새끼가 어미를 알아보는 일에선 생후 몇 시간에서 며칠 사이다. 언어의 습득에선 대략 11세까지다. 즉 11세까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언어는 뒤에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원어민처럼 쓸 수 없다.

언어 능력은 보편적이므로, 보통 사람도 여러 언어를 쓸 수 있다. 물론 먼저 배운 언어를 더 잘 쓴다. 두 언어를 동시에 배워도, 한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세하다. 그렇게 먼저 배운 언어가 모국어로 되므로, 언어적 정체성에서 혼란은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되도록 어릴 적에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국어를 배우고 이어 세계어인 영어를 배운다.

이중언어 사용은 크게 이롭다. 풍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으므로, 삶이 풍요로워진다. 이중언어 사용자의 뇌는 단일언어 사용자의 뇌보다 민첩하고 갈등을 잘 풀고 치매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문화적 공감 능력, 열린 마음 및 사회적 주도력에서도 낫다. 자연히, 지능이 높아지고 소득도 따라서 높아진다.

반면에, 여러 언어를 배우는 데서 나오는 부작용은 없다. 단 하나의 문제는 분산적 이중언어 사용(distractive bilingualism)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첫 언어의 습득이 중단되거나 불충분하면, 그 아이는 두 언어 다 제대로 쓰지 못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민 가정의 아이들에게서 때로 나온다.

이것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라는 교육부 조치의 근거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상황을 거꾸로 읽은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민 오지 않았다. 모두 엄마 품에서 한국어를 배워서, 첫 돌 지나면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는다.

영어 조기 교육이 문제적이라는 조사들은 우리 사회에서만 나온다. 그런 조사들은 단편적이고 편향적이어서 방법론적으로 너무 허술하다. 무엇보다도, 언어학의 정설에 어긋나는 결론을 내놓고도, 그런 예외적 현상이 나온 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영어를 배우지 못해서 입을 손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당히 클 것이다. 교육부가 잘못된 정책을 세우고 일관성이라는 명분으로 그것을 확대하려는 것은 어리석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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