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위험 무릅쓰고 생활비 마련나서

11일 대전 서구 갈마동. 김모(82) 할머니가 폐지를 쌓아올린 리어카를 끌고 빙판길 위를 걷고 있다.
11일 대전 서구 갈마동. 김모(82) 할머니가 폐지를 쌓아올린 리어카를 끌고 빙판길 위를 걷고 있다.
"늙어서 할 수 있는 게 폐지 줍는 일밖에 더 있겠어…이 일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한파가 몰아친 11일 오전. 대전 서구 갈마동에서 만난 김모(82·여) 할머니는 꽁꽁 언 손에 목장갑 한 켤레를 두르고 빙판길 위로 나섰다. 유모차의 손잡이는 얼음이 녹지 않은 상태였고, 허름한 외투는 지퍼가 고장났는지 잠그지도 않았다.

이날 최저 기온은 영하 12도. 갑자기 내린 함박 눈에 한파까지 겹쳐 길이 꽁꽁 얼었지만, 김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대신 폐지를 모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침부터 동네 곳곳을 돈다.

3년 간 폐지를 주워 온 김 할머니는 "지난 며칠 간 눈이 많이 내려 폐지를 줍지 못했다"며 "길이 얼었지만 1-2시간 폐지를 주워야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어 나왔다"고 말했다.

하루 2-3시간 가량을 꼬박 돌아 2000-3000원을 벌고 나서야 잠시 편의점에 들어가 몸을 녹인다. 폐지는 1㎏당 110원 정도. 이마저도 며칠 전 130원 하던 것이 떨어졌다.

폐지 값이 떨어지는 이유는 값싼 수입폐지 때문이란 게 업체 측 얘기다.

지역 고물상 관계자는 "고물상은 폐지가 없어서 난리인데 폐지 값은 점점 떨어진다"며 "동남아·일본에서 들여오면 1㎏에 150-170원 정도 하고 대량으로 수입하면 훨씬 저렴해 200원 이상으로 납품해야 마진이 나는 내수폐지는 제지회사들이 사주질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 모은 폐지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으로 가는 길은 더 험난하다. 좁은 인도를 막지 않으려 차도 갓 길을 이용하지만, 눈이 쌓인데다 뒤에서 오는 차량을 확인할 수 없어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

이런 상황에 노출된 노인은 대전 지역에만 약 45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대전에 폐지 수거업체가 약 450곳이 있는데 통상 업체의 10배를 종사자로 산정한다. 전국적으로는 170만 명의 노인이 폐지를 줍는다.

대전 경찰은 노인을 교통사고에서 보호하기 위해 야광조끼·야광봉 등을 제작·배부 하고 예방 교육을 펼치고 있지만,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정책은 없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노인 교통안전을 위해 지난해 빛 반사 바람막이 846벌, 손전등 1700개 등 물품을 배부했다"며 "주로 노인정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친다. 아직까지 폐지 줍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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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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