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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철 "92학번 박찬호 조성민 임선동 생각하며 이 악물었다"

2018-01-10기사 편집 2018-01-10 16: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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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신인 선수들 상대로 강연…"힘들 때는 부모님 생각하라"

"여러분 잠깐 일어나서 서로 축하하는 박수 쳐주세요. 어깨도 두드려 주고."

프로야구 KBO리그 통산 최다승 2위(161승)에 빛나는 정민철(46)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이런 주문에 점심 직후 졸음과 싸우던 앳된 선수들은 기지개를 켠 뒤 서로를 쳐다보며 박수를 치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10일 오후 대전 컨벤션센터에서는 올 시즌 프로야구 선수로 첫발을 내딛는 신인·육성 선수 150여 명을 상대로 한 '2018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선배와의 만남' 강연자로 나선 정민철 위원은 한국 야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다.

그는 한화 이글스(빙그레 포함)에서 16시즌을 뛰며 송진우(210승)에 이은 KBO리그 역대 2위이자 우완 최다승(161승), 우완 최다 이닝(2천394⅔이닝), 우완 탈삼진 3위(1천661개)의 기록을 남겼다.

2000∼2001시즌에는 일본프로야구 최고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으로 뛰었다.

정 위원은 자신을 이렇게 성장시킨 동력은 최고를 향한 열망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92학번인 투수 박찬호, 고(故) 조성민, 임선동을 언급했다. 정 위원은 이들보다 한 살이 많고 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았지만, 대전고 진학 때 1년을 쉬어 같은 시기에 고교를 졸업했다.

정 위원은 세 선수를 거명하며 "내가 이들과 같은 그룹에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러웠고, 이런 동력이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난 계약금을 적게 받고 입단했고 나머지 세 선수보다 월등했던 적이 없었다"며 "열등감도 있었지만,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이를 악물고 정말 열심히 노력해 '적어도 이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봤다.

1992년 프로에 입단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소속팀 한화가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도 세상이 내 것 같았다.

2000년 일본 명문 요미우리에 입단하게 되면서 '내 인생에 더는 실패는 없다.' 싶었지만, 이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정 위원은 "운동선수한테 정점은 가장 위험한 꼭짓점이 될 수 있다"며 "나의 경우는 그동안 '이건 해야 한다'고 자신과 약속했던 것들을 지키지 않게 되면서 연습까지 소홀히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결국 일본에서 "참담한 성적"을 거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심기일전한 정 위원은 예전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한 투수로 활약했고, 한화에서 그의 등번호 23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정 위원은 선수들한테 드라마 '미생'의 일부를 보여줬다. 주인공이 '난 어머니의 자부심이다'라고 되새기는 모습이 담긴 장면이다.

정 위원은 "여러분이 프로 생활을 하면서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많겠지만, 이 대사 내용처럼 여러분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기도하고 당신들의 인생을 건 부모님을 생각하면 조금 더 힘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