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에 글을 쓰기로 하니, 신문사에서 증명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마땅한 사진을 찾느라 최근 몇 년간의 사진들을 뒤져보았다. 사진 찍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여기 저기 행사에서 단체기념사진 찍을 기회는 종종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도 별로 없다. 퇴직한 이후로는 더욱 더 사진 찍을 기회가 없어 제대로 된 사진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사진을 찍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사진 속의 내가 낯설어 보이기 때문인 듯하다. 젊어서도 내 사진을 보면서 나 같지 않다고 느끼곤 했었는데 나이 들어가며 찍힌 사진 속에서는 흰 머리에 주름이 많이 드러난 여자가 어색하게 웃고 있는데 영 생소하다. 그런데 남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한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내게 말했었다. 그 지인의 어린 아들은 매우 개성 있게 생겼었다. "엄마들은 다 자기 아이가 제일 잘생긴 줄 알아. 그런데 자기 아이가 잘생기지 않았다는 진실을 알 때가 있는데 바로 자기 애 사진을 볼 때지. 그때도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못생겼다고 인정하지 않고 사진이 왜 이렇게 잘못 나왔지? 라고 해." 나는 그 엄마의 말이 매우 공감이 가고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는데 엄마에게야 자기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데, 사진이 그 걸 못 살리는 것이 당연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지만, 실은 뇌에 콩깍지가 씐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우리의 뇌는 입력된 시각정보들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정보들은 여과시키고 생존에 필요하거나 사랑 또는 혐오의 대상 등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들은 강화시켜 집중하도록 한다.사람들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사진은 대상물을 렌즈에 포착 되는대로 여과 없이 보여주므로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많이 난다.

멋있게 가지를 뻗은 나무에 관심을 쏟으면 주변의 잔 덤불이나 야생화는 시야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 멋있는 나무의 사진을 찍으면 시야 밖에 있던 주변 배경의 볼품 없는 나무나 잔 덤불들이 다 드러나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성인들은 원숭이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나 6개월 미만의 영아는 아직 뇌가 들어온 시각정보를 프로세싱하지 않으므로 원숭이 얼굴을 잘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자라면서 아기는 점차 생존에 도움 되지 않는 원숭이 얼굴 식별 능력은 줄이고 대신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엄마, 아빠와 그리고 식구와 여타 사람들의 얼굴을 식별하고 표정 특히 엄마의 표정을 파악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사회적 동물로 성장하게 된다.

여성리더십 강의 시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 속에는 빈약한 몸의 남자가 거울 속의 근육질의 우람한 체격의 자신을 보고 흐뭇해하고 있는 반면 여자는 날씬한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에서 비만인 자신을 보고 있는 장면을 대비해 보여줌으로써 남성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매우 후한 반면 여성들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짐을 역설하고 있다. 어린이는 거울 속의 자신이 실제보다 더 어른스럽게 보일 것이나 사진 속의 자신은 유치해보일 것이다. 반면 노인들은 거울 속의 자신에 비해 사진 속의 자신은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울은 각 개인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아상의 투영인 반면 사진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실체에 어느 정도 더 근접한 모습을 보여준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은 개인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사진을 보며 느끼는 생소함의 정도는 바로 자아상과 실체와의 간극의 정도를 보여준다. 자아상과 실체와의 간극이 크면 각 개인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심하면 반사회적으로 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각 개인의 사진에 대한 느낌이 자신을 파악해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광화 전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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