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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자태만큼 화려했던 그 날들이 그리워지는 발걸음

2018-01-02기사 편집 2018-01-02 10: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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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흐르는그곳 골목길] 19 대전 중앙시장 한복거리

첨부사진1대전중앙종합시장 한복패션역. 이용민 기자
길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은 길을 따라 흐른다. 대전의 대표적 원도심 상권 지역 중앙로는 대전역에서 내린 이들이 옛 충남도청을 향해 걷거나 혹은 그 반대로 발걸음 하면서 생겨났다. 사람들이 모여들다보니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됐다. 1911년에는 일본일들이 만든 '대전 어채시장'이 들어서면서 대전천 인근까지 확장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장터는 한국전쟁 때 남하한 이북 피난민들이 대전역 주변에 모여들어 옷집과 여러가지 도·소매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중앙시장은 대전이라는 도시 역사의 축소판이다.

1960년대 말에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충청권은 물론 전라도, 경북, 경기 일대 주단·포목·한복업계를 장악하다시피 하면서 상권이 전국에 영향을 미쳤다. 대전역을 거치지 않고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방소매상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세월의 흔적이 이마에 깊게 패인 한 상인의 말처럼 '돌멩이를 갖다 놓아도 팔리던 시절'이었다.

화려했던 옛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금도 중앙시장은 중부권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대흥교와 목척교를 잇는 구간에 대전역에서 원동 사거리까지 길쭉하게 늘어선 면적이 약 11만2000㎡에 달하며 9개의 상설시장과 3개의 대형상가, 귀금속거리, 한복거리, 생선·건어물 거리 등 6개의 각종 특화거리에는 약 4200개의 점포와 노점상이 들어서 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잠시 주춤하던 중앙시장은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한복거리는 당시 영화롭던 시절의 중심에 있었다. 선택의 다양성과 타지역과 가격 경쟁력은 대전의 대표적인 특화시장으로 전국적인 명맥을 유지하는 힘이다.

"한복거리 전성기는 1980년대였다. 지금은 당시 20% 정도 수준이나 될까. 지금도 전국에서 중앙시장처럼 다양한 품목의 원단을 공급하는 곳이 없다. 서울이 크긴 한데 단일품목만 취급하는 상인이 대부분이라 이것저것 비교하면서 사려면 수고스럽다. 충청권 한복은 중앙시장이 거의 공급한다고 봐야 맞는다."

1979년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는 유장혁(58)씨의 말이다. 원단가게를 운영하는 유씨는 한복거리 2세대 격이다. 1세대는 포목을 처음 시작한 6·25 피란민들이다.

한복을 대형마트에서도 팔고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는 시대지만 발품이 가져다주는 구경의 즐거움과 선택의 폭을 따라올 수는 없다. 한복은 자연을 닮아 있다. 선이 둥글고 넉넉하다. 전통 염료에서 나온 색을 주로 사용해 빛깔이 튀지 않고 은은한 매력이 있다. 자주 입지 않아 불편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불편한 건 오히려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일일지 모른다. 한복은 입는 몸가짐이 중요하다. 머리를 단정히 하지 않고 늘어뜨려서는 맵시가 살지 않는다. 속곳부터 버선에 꽃신까지 제대로 갖춰 입지 않으면 어색하다. 결국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가다듬어 주는 옷이다. 우리 전통의 멋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복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복거리는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유씨는 아케이드 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전통시장 활성화에 의욕적이다. 격주로 한달에 2번씩 금요일마다 한복거리에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아트플리마켓의 일환으로 중앙아트공예난장을 개최하고 있다. 아케이드 관리위원회는 천연염색, 매듭공예, 냅킨아트, 애견옷 등 각종 공예품 판매·체험행사 부스 30여개를 설치해 주민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한복거리는 사실 아케이드가 설치되고 보행 편의성을 위해 좌판이 거의 사라져 시장골목이라 부르기에는 어색하다. 공간적으로는 골목이 아니지만 그래도 정서적으로는 골목이 남아 있다. 한 귀퉁이에 조그만 탁자를 놓고 순대 안주에 막걸리 주전자를 기울이는 미니 주막을 보면 얼른 앉은뱅이 의자에 앉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쌀쌀한 날씨 속에도 웃으며 건네오는 호객행위가 달갑다.

한복거리는 청년구단이 있는 메가프라자에서 시작돼 중앙도매시장, 신중앙시장, 중앙종합시장까지 이어진다. 주단, 원단, 한복 간판들을 따라 걷다 보면 헌책방, 중고레코드판 가게, 철물점, 전당포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앙시장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새롭게 읽힐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책들을 보니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청년구단과 연상작용을 일으켜 채만식의 소설 속 법률책을 맡겨 술을 마시던 주인공이 떠오르기도 한다. 전통시장에서 느낄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 '추억'이다.

1500원짜리 커피와 2000원짜리 생과일주스, 3000냥 잔치국수 한 사발, 도넛이 아닌 '도나스' 가게 폭신한 꽈배기와 쫄깃한 찹쌀도넛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별미다. 중앙종합시장 '개천식당'은 60년 전통의 이름난 맛집이다. 이북 출신 할머니가 전쟁 통에 월남한 이후 시장 골목 허름한 건물에서 평양식 만두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원 주인은 작고했고 주방에서 15년째 일하던 종업원이 인수해 맛을 이어가고 있다. 당면을 사용하는 보통의 만두와는 달리 김치, 숙주, 대파가 들어가 이색적이다.

유씨는 "폐백도 양복 정장 위에 마고자 정도만 걸치고 한다니 말 다했다"며 "한복 입는 전통 없어져 이제는 제사나 명절에도 보기 힘들어졌다"고 아쉬워했다. 전통 한복은 재단이 복잡하고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간다. 치수에 맞게 만들어야 제대로 테가 나 기성품이 주류인 양장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다. 유씨는 한복패션쇼 같은 일시적 홍보보다는 전주 한옥거리처럼 한복을 입고 나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활동성이 떨어지는 한복의 단점을 적게 하고 맵시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사진 찍을만한 그림 만들어 줘야 실질적인 수요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50년 전 장을 보러 가던 어느 어머니의 고무신이 딛던 그 길을 또각또각 구두나 타박타박 등산화가 또 걸어간다. 그러나 발걸음은 부쩍 줄어들었으리라.

한복처럼 골목도 사라져 가고 있다. 예전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평상 위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아이들은 비석치기, 구슬치기, 고무줄놀이를 하며 재잘댔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추억을 만들던 골목은 하나 둘 지워지기 시작했다. 인간미라는 단어도 점차 듣기 어려워졌다. 길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따라 길은 흐른다. 골목을 지키는 것과 사람을 지키는 일은 다르지 않다. 이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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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대전중앙종합시장 한복패션역.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3대전중앙종합시장 한복패션역.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4대전중앙종합시장 맛집 개천식당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5대전중앙종합시장 맛집 개천식당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6대전 중앙시장 한복거리를 상징하는 옷감 장식이 아케이드 천장 아래로 길게 걸려 있다.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7대전 중앙시장 한복거리 상가 내부.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8한복거리 초입 풍경. 골동품상점과 헌책방이 늘어서 있다.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9한복거리가 시작되는 중앙메가프라자 건물 1층 모퉁이 중고레코드가게.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10한복거리 초입 풍경. 골동품상점과 헌책방이 늘어서 있다.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11한복거리 초입 풍경. 골동품상점과 헌책방이 늘어서 있다. 이용민 기자
첨부사진12대전 옛 중앙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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