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 당선작 원보람 소감

시를 쓰기 시작한지 10년 만에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소감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시를 붙잡고 보냈던 무수한 밤들이 쏟아집니다. 시는 저에게 애증의 연인입니다. 사랑을 보낼 때는 차갑기만 하더니 괴로운 날이면 언제나 곁에서 아픈 시간을 함께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쓰는데도 내 시들은 언제까지 책상 위에만 머물러야 하는지 좌절하다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되었을 때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선 소감을 쓰는 지금 홀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알지도 못하는 당신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고, 몸이 아플 만큼 애쓰지 말고 애증의 연인과 오래 사랑하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지난날을 돌이켜볼수록 고생도 아니고 낙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저는 글을 배우고 쓰는 동안 즐거운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았습니다. 단순한 고생이라면 좋았겠지만 한국에서 글을 쓰며 경험한 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회의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술이 좋은 사람들이 개소리를 아름답게 써서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목격하기도 했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창작자들을 개소리로 속여 이용해먹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가 오아시스가 아니기에 앞으로도 사막을 헤매야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글을 쓰는 일이 너무 좋아서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해왔고, 버텨낼 거라고 말한다면 분명 거짓말일 것입니다. 몇 년 전 낙산공원 근처 카페에서 합평을 했었습니다. 서로의 시를 붙들고 열을 올리다가 문득 노을이 지는 광경을 보았고, 우리는 약속한 듯이 창가를 바라보며 한동안 침묵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그 순간 온전히 평화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기루 같은 그 순간들이 마음에 깊이 남아 오래도록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기쁜 일들은 모두 사막을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 교수님들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가슴이 뛰어서 잠을 잘 못 잤다는 아빠와 너무 기뻐서 울었다는 엄마, 사랑합니다. 그리고 착한 내 동생들과 나를 구원한 고양이 다니, 언제나 애정한다. 마지막으로 책상 너머로 시를 내보일 기회를 주신 대전일보사에 마음을 전하며, 어두운 새벽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이름을 불러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언어가 아름다워지는 만큼 성숙해지는 인간이 되겠습니다.

1987년 대전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졸, 동 대학교 대학원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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