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단편소설 김수영 당선소감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겹이나 쌓였을까. 눈을 가늘게 뜨고 세었지만 겹을 셀 수는 없었다. 쌓인 눈 사이, 보이지도 않는 틈으로 햇살이 파고들었다. 햇살이 따스할수록 눈은 차갑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끌어안으며 각각의 모습은 사라졌다. 사라져버린 눈의 결정을 상상했다. 둥근지, 네모난지, 세모인지, 뾰족하고 흐느적거리는지, 막대기 모양인지. 모양이 다른 눈을 잇고, 쌓고, 뭉치다가 당선 소식을 받았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발바닥이 뜨거워지더니 얼굴이 달아올랐고 머릿속까지 뜨거워졌다. 온몸이 열 덩어리로 변했다. 내 몸으로 마당에 쌓인 눈도 녹일 것 같았다.

마당으로 나가 눈을 뭉쳤다. 뭉친 눈을 두 손으로 잡고 서 있었다. 손가락 끝이 서서히 시려왔고 손바닥이 얼얼해졌다. 손바닥이 감각을 잃어갈수록 눈덩이는 작아졌다. 눈덩이는 녹아 물방울이 되었고 떨어져 쌓인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내 손안의 눈 뭉치가 물 한 방울로 남을 때까지 나는 서 있었다. 눈은 온데간데없고 물만 흥건한 손, 아려오는 손을 맞잡고서야 냉정하게 나를 들여다보았다.

눈 녹인 물로 다시 얼음을 얼리듯 한 문장 한 문장을 눌러 썼다. 빨리 술술 와주는 문장도, 더디게 어렵사리 찾아오는 문장도 있었다. 문장은 나를 괴롭히고 애달프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폭설로 쏟아졌다. 문장이 쌓여 소설이 되었다. 나는 기다렸다. 소설 속 화자가 내게 말 걸어오기를. 나는 소설 속 화자와 친구가 되었고, 울고 웃었다. 상처 주고 앓았다. 싸우고 화해했다. 외로울 틈이 없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아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도. 내속의 소설 친구는 자라났고 일어섰다. 막 첫발을 떼었다. 서두르지 않고 오래오래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제 글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대전일보,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으로 조금씩 은혜 갚겠습니다.

박상우 선생님.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제 글의 뼈가 되었고, 그 뼈를 세워 소설이라는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행성 B612 문우들. 날카로운 비평이 제게는 더없는 해독제이면서 영양제였습니다. 기뻐해 준 홍희정 작가님. 고맙습니다. 소식을 듣고 환하게 웃으실 부모님, 부모님의 깊은 주름살이 제 힘입니다. 마음 다해 응원해준 알피네, 해나, 해늘. 고맙고 사랑해.

1957년 서울 출생.

충남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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