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한 명예교수
김양한 명예교수
새해 아침에 우리 고장 최고의 산 계룡산을 찾는다. 언제 가도 반갑다며 가슴을 활짝 열고 맞아 주는 산, 멀리서 보면 웅대한 우리의 꿈을 크게 보여 주고 가까이 다가 서면 한 없이 포근하고 수많은 모습과 색으로 아름다운 산이다. 이 산기슭에서 30년 내내 살며 산을 그린 화가가 있는 것은 우리 고장의 자랑이다. 신현국 화백이다. 신 화백의 계룡산 울림 연작! 계룡산의 아름다운 여러 모습을 참으로 다양한 표현으로 그 절절한 마음을 붓에 담아 울림을 재탄생 시키고 있다. 신 화백의 계룡산 그림에는 세잔이 있고, 반 고흐가 있고, 때로는 고갱이 있고 칸딘스키가 있다. 아니 이 모든 화가들의 표현을 넘어선 신 화백만의 화풍이 있다. 그래서 계룡산은 계룡산이 아니라 계룡산의 울림이 된다. 그런데 왜 신화백은 계룡산 기슭에 살면서 계룡산만을 그리는 것일까. 계룡산을 면벽하면서 더 크고 깊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일까. 계룡산이 내는 소리를, 그 울림을 그리는 분이 바라보는 새해는 어떤 것일까. 계룡산을 통해 새로운 비구상을 꿈꾸고 있는 그가 우리의 미래, 4차 산업의 앞에서 선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 화가들의 이러한 연작은 사실 크게 놀랄 일이나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한 사물에 대한 관조를 통해 우주를 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새로운 철학적 사유의 방법은 아니다. 유럽의 19세기 서양화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연작을 통해 새로운 화풍을 찾아내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계룡산 연작과 매우 비슷한 연작을 찾아보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후기 인상파, 야수파를 거쳐 큐비즘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세잔의 추상은 사실 세인트 빅투아르 산 연작에서 탄생한다. 부유한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을 가지고 세잔은 프랑스 남부 악상 프로방스에 정착하고 이 곳에서 20년 넘게 아침에 일어나서 그림 도구를 챙겨 들고 산을 그리러 나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것은 멈출 줄 몰랐다. 오랜 세월 동안 관찰한 눈을 통해 들어온 산의 모습이 연습을 통해 하나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되면서 세잔의 `생각 항아리`는 추상의 기본 표현을 만들어 낸다. 구, 원추, 원기둥이 모든 표현의 근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표현법에 새로운 것을 갈구하던 화가들은 자극을 받는다. 입체파의 브락크 나 피카소가 이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세잔의 구도자와 같은 절실한 오랜 갈망은 그의 생각항아리에 차곡 차곡 쌓여 오랜 세월 동안 좋은 곰팡이 균이 새로운 표현법을 만들어 냈다.

사실 새로운 화풍의 발견은 공학적으로 보면 새로운 제품의 발견, 혹은 새로운 가공법의 발견 등과 동일한 충격을 주는 것이다. 빅데이타로 표현되는 소위 4차산업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에 모두들 부산하다. 마치 세잔의 추상이 세상에 나왔을 때 술렁거림과 같다. 모두가 4차 산업에 술렁거리고 마음이 허전하고 뒤 떨어질까 허둥댄다.

그러나 뒤따라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항상 신나는 것은 아니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신현국 화백과 같이 계룡산을 오랫동안 그린 우리만의 오랜 관찰과 연습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생각항아리에서 지금 잘 익어가고 있다. 이것을 꺼내 맛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계룡산을 가지고 있다면 4차 산업은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등과 같이 우리에게 미래의 먹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부지런히 남의 것을 베끼고 땀 뻘뻘 따라가는 것도 의미 있지만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계룡산을 보고 울림을 그리는 그 절절함의 공학은 배워야 한다. 이것을 AI 는 감히 할 수 없다.

미래에는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을 소비하는 사람, 두 종의 인류가 살게 된다. 산업도 교육도 이것에 그 모습을 맞추어야 한다. 교육은 즐겁게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 것에 실패하면 우리는 모두 생각을 소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다시 식민지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하다. 공학과 교육은 신현국 화백에게서 그 방향을 보아야 한다. 정부도 신현국 화백에게 정부의 정책 방향을 물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있지 않고 계룡산에 있다. 김양한 KAIST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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