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배당된 한밭춘추 아홉 꼭지 중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명색이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 재미있는 이야기나 하나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하이텔통신이 한창 유행하던 때에 만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국방의무까지 마친 후에 가족을 쫓아 미국에 갔다가, 사업과 연관되어 한국에 왔는데, 그 일이 잘 안되고 미국의 영주권 기간까지 만료되어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 했었다.

아무튼, 그가 군대를 막 제대하고 어느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어느 날인가 근처의 마을입구에 있는 당산나무 아래에서 큰 굿이 벌어졌다. 근동이 떠들썩하도록 굿을 치룬 마을사람들은 마지막에 당산나무 밑에 산 닭을 묻어놓고 굿을 끝냈다. 일종의 산제물인 셈이다. 한편 공사현장에서는 매일 밤 두 명씩 조를 이뤄 경비를 섰는데, 그는 그곳이 외지인 탓에 숙소가 마땅치 않아 아예 공사장 가건물에서 기숙을 했다. 종일 노역을 하고 밤에 현장을 지키다보면 배도 고프고 심심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따분하던 참이라 당산나무 아래 묻어둔 생닭 생각이 간절했다. 마침 함께 번을 서던 사람도 말이 통하는 이여서 함께 당산나무 아래로 가서 그 닭을 꺼내다 볶아 먹어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밤에는 경비 당번을 맡은 이가 급한 일이 생겨 돌아가고 혼자 남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녘에 설핏 잠이 들었는데, 누가 자꾸 문을 흔들고 발로 걷어차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누구 못지않게 배짱이 두둑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적이 누군지를 모르니 선뜻 문을 열고 대적하기가 겁이 났다. 그런데 야밤의 공격은 그날로 그치지 않고 매일 밤 계속되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도 내막을 알게 되어 결국 몇 명이 지키고 있다가 그들을 잡는데 성공했다. 잡고 보니 큰개만이나 한 사나운 살쾡이 두 마리였다. 그러니까 그 당산나무아래에 묻힌 닭을 노리고 있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재미있는 건 누군가를 만나서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하면 뭔가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은 특별하고 파란만장해서 족히 서너 권의 소설거리는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들 덕분에 나는 몇 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하기야 이야기하자고 들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찌 서너 권의 소설거리 뿐이겠는가. 이예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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