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충북 제천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 12월 초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로 15명이 사망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제천 스포츠 센터 화재로 2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 총리를 비롯하여 많은 정치인이 현장을 방문하고,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단이 꾸려지고, 경찰은 원인 규명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사고를 당한 분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 세월호 때와 달라진 게 무어냐며, 대통령과 정부의 안전관리 소홀을 지적하고 나서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전문가들은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장비. 지방소방서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소방인력과 장비확충,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을 해법으로 제기하고 있다.

위험으로부터의 안전한 삶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이고, 대통령과 정부는 이를 보장해야할 책무가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 확보를 통해 관리 능력을 향상시켜야 할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다. 국가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면 세월호 때와 같이 정권이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대통령과 국가에 책임을 묻고, 정부가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하면 우리는 정말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국가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철저히 관리하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악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고, 그 몫은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사고발생 가능성을 50%로 줄이는 비용과 이를 다시 25%로 줄이는 비용은 전혀 다를 것이다.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하급수적인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위험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재난과 사고는 핵발전소나 LPG저장탱크처럼 국가 관리 아래있는 시설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고처럼 대부분의 사고는 민간시설과 민간의 활동과정에서 발생한다. 국가적 관리와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뿐아니라, 이를 모두 국가에 맡긴다면 우리는 그 댓가로 상당한 정도의 자유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배가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안전을 무시한 낡은 제도와 관행을 혁신적으로 바꿔가야 한다. 특히 공무원, 지역토호세력, 기업과 결탁한 후진적인 `봐주기식 안전관리`는 이제 끝내야 한다. 정부의 몫이다.

그렇다고 위험의 책임을 정부의 관리 소홀에만 돌릴 수 없다.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일찍이 설파한 바와 같이, 우리가 지난 세기 동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소위 우리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가져다 준, 뒷그림자이다. 그 그림자는 도로, 철도, 건물, 학교, 식당, 각종 편의시설 위에 숨어있다. 우리는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안전을 이유로 우리의 일상을 모두 정부에 맡긴다면, 우리가 피 흘려 쟁취한 모든 자유를 모두 반납하고 조지오웰이 말한 빅 브라더(Big Brother) 사회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위험은 진보와 보수를 가려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지역과 대상에 따라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위험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거대한 국가는 우리의 일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불평불만만으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시민과 주민이 일상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위험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위 `위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자발적인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 만큼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국가가 수천억 원의 돈을 들여 하지 못하는 일들을 이들은 아주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 해낼 수 있다.

시민과 주민의 자발성이 살아나기 위해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간섭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간섭할수록 자발성은 약화되고 효율은 떨어진다. 둘째,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시민 스스로 결정한 사항에 대해 지원하고 협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결국, 위험사회에서 안전의 확보는 삶의 민주주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시민과 주민이 자신이 겪고 있는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고, 국가와 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보장하고, 그들의 의사결정을 존중할 때, 우리는 보다 안전한 사회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박태순 박사·사회갈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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