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농부`는 고위공직자 흠결로 청문회장의 단골메뉴이다. 가령, 서울서 생활하며 강원도 등 원거리의 농지를 소유해 쌀직불금을 수령했다는 지적이다. 농사를 직접 짓지 않은 무늬만 농부이면서 쌀직불금을 챙겼다는 의혹까지 얹혀진다. 당사자들이야 바쁜 시간을 쪼개 농사에 할애했다며 억울함까지 호소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과연 그럴까" 시큰둥해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1항에는 `경자유전`이 나온다.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가 1항의 조문이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은 비농민의 투기적 농지소유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쉽게 말해 농지는 농사 짓는 사람이 소유해야 한다는 대전제이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농지를 소유한 사람들이 늘어나 정작 논밭에서 꼭두새벽부터 밤 늦도록 땀 흘리며 일 하는 농부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해 고통받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헌법에까지 경자유전 원칙을 못 박았다.

헌법 조항에도 오늘날 경자유전 원칙은 퇴색했다. 경자유전 원칙을 지키기보다 갈수록 예외를 폭 넓게 인정해주며 구호로만 남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자유전 원칙에 위배된 비농업인의 농지소유로 귀농자의 농지취득이 어려워지고 지가상승으로 임차도 어려워지는 문제도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헌법 개정에 경자유전 원칙을 강화해 농지 불법 소유와 투기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밭에 살며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할 분야는 우리 사회 비단 농업 뿐이 아니다. 전국을 막론하고 도심은 물론 유망 개발 예정지들까지 지역의 쓸 만한 땅들을 외지인들이 독차지한 지 이미 오래다. 한동안은 외지인들이래야 국내에 한정됐지만 어느 때부터 외국인들까지 가세했다. 충남도의 총 토지면적 중 1794㎡은 외국인 소유다. 지역에 살지도 않는 이들이 많은 땅들을 소유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자치와 분권이 작동할 수 없다. 땅들을 소유한 외지인들 입맛에 맞는 대규모 개발 공약만 난무하고 이를 정책화할 중앙정부의 행보에만 온통 눈길이 쏠린다.

지방이 중앙의 소작농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헌법개정에 각 분야 경자유전 원칙을 더 넓고 깊게 담아야 하지만 헌법개정특위는 난항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지방은 언제까지 소작 신세로 남아야 하는가.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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