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봄에 대덕구문화원에서 연락을 받고 실버극단을 창단 했다.

오디션을 보러온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면면히 재능을 살펴보았다. 학창 시절에 학예발표 경험이 있던 분도 있었고, 약장사를 연기해서 끼를 뽐내는 어르신도 있었다. 찰진 사투리가 기본으로 장착된 어르신들은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연극놀이와 신체 훈련을 하면서 연극수업에 맛을 본 배우들은 조금씩 무대 공포를 이겨갔다. 몸은 늙어가고 매일 챙기는 약봉지도 많지만 열정은 젊은이들 못지않았다. 그해 가을에 흥부전 뒷이야기로 작품을 연습하고 전국실버 대회에 나가서 3등을 했다. 1등과 2등은 음악과 춤을 공연한 팀이 가져갔고 우리가 3등을 한 것이다. 자신감이 충천해서 돌아왔다. 한해두해 공연을 새롭게 만들고 즐기며 생의 유일한 낙으로 살아가는 어르신들 모습을 보고 보람도 많이 느꼈다.

8년이 지날 때 쯤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노화를 이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연습을 한번 하고나면 무릎관절 통증으로 앉아야만 하는 배우도 생기고 돋보기가 없으면 대본을 읽을 수 도 없었다. 일반 대본활자보다 훨씬 큰 포인트로 대본을 다시 만들었고 그럴수록 더 애착을 가지고 연습에 임했다. 배우신체 훈련이라기보다 노인건강을 위한 체조를 연구해서 수업 때 진행했다. 효과는 알 수가 없었다. 한분은 수술 후에 탈퇴하시고 또 한분은 치매증상이 심해져서 그만 두게 되었다.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이 있다. 어르신들의 인생을 모아서 만든 `소풍`이라는 작품이다. 대사도 어르신들이 쓰고 공동작업으로 탄생했으니 더욱 가치가 있었다. 대만에서 태어나 유연을 보낸 할머니도 있었고, 시골에서 시집살이를 하면서 겪은 이야기와 현대사에 있었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분도 있었다. 한분은 제주도 4·3 사건으로 할아버지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분노한 양민들에게 집안이 풍비박산 난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 때문에 청상과부가 되어 홀로 자식을 키운 할머니도 있었다. 21세기를 살면서 상처를 품고 하나가 되어 노년을 보낸 것이다. 삶의 예술은 상처를 치유하고 세월을 유유히 타고 살게 했다. 지금 내 책상에는 배우들의 단체사진이 있다. 활짝 핀 얼굴로 웃고 있으니 영원할 것 같다. 이시우 극작가 겸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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