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이 그것이다. 독감은 호흡기 질환으로 매년 많은 사람들이 발열과 기침으로 고생하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유럽에서 5000만 명 이상이 희생됐고, 40년 뒤 1957년에는 중국에서 발생한 `아시아 독감`으로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최근에는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해 계절에 관계없이 주기적으로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4년 `에볼라`가 출현했다. 2015년에는 중동 지역을 방문한 남성에 의해 국내 전파된 `메르스`로 인해 전 국민이 공포에 떨기도 하였다.

바이러스는 사람만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가축과 조류도 예외가 아니다. 겨울철이면 찾아오는 구제역과 조류독감(AI)이 그것이다. 구제역은 소, 돼지, 양 등의 발굽이 2개로 갈라진 동물만 감염시키는 구제역바이러스(FMDV)가 원인이다. 이 바이러스는 입 주변과 발굽에 수포를 일으켜 구제역이라고 명명됐다. 2011년 겨울에 국내에 발생한 구제역 아웃브레이크는 축산 농가에 전대 미문의 피해를 낳았다. 소, 돼지 등의 가축이 350만 마리가 살처분됐고, 농가 피해액도 3조 원에 달했다.

AI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에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으로 닭, 칠면조, 오리 등 가금류에서 피해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2003년 처음 AI가 발생한 이후 총 6번의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 겨울에는 AI로 천안, 홍성 등 50개 지자체 946개 농장에서 오리, 닭 등 가금류 37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무엇보다도 좁은 공간에 밀집시켜 사육하는 산란계 농장의 피해가 커 전국 산란계의 34%가 살처분됐다. 그 여파로 평상시 5000원이던 계란 한판 가격이 1만원으로 폭등하기도 했다.

다행히 올해 구제역 발병 소식은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AI는 지난 겨울 같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상황이 심상찮아 보인다. 지금까지 가금 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전북 고창·정읍, 전남 영암에서 4건이 발생했다. 야생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AI가 검출된 곳도 순천, 용인, 제주, 천안 등에서 5건으로 늘었다. 특히 그 동안 AI 청정지역인 제주도도 뚫렸다. 그리고 야생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AI가 검출된 충남 천안시 풍서천 주변은 오리, 닭 등 가금류가 많이 사육되고 있어 방역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물론 AI가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인체 감염사례가 보고된 바 없다. 최근에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고병원성 AI의 인체감염 사례까지 발생했지만, 대부분 생닭과 생오리 등을 직접 접촉하는 열악한 위생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서 발병한 것으로 생활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서 너무 염려할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부는 `가축질병 위기관리 실무 매뉴얼`에 따라 구제역과 AI의 조기 발견해 그 확산을 차단하는 초동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나 AI의 확산을 완벽히 예방할 수 없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가축 그리고 조류를 숙주로 해 변종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염병의 잠재성을 가진 병원체들이 야생동물 세계에 얼마나 많겠는가.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인류가 결코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의학과 분자유전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지만 사람과 야생동물을 넘나드는 동물 바이러스의 정체를 모두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바이러스를 정복하려는 오만을 버리고 조화로운 공생을 모색하는 것이 정답인지 모른다. AI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공장식 밀집사육이 꼽히고 있다. 고기와 달걀을 싼 값에 얻으려는 우리의 이기심이 AI 확산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신종 또는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좋은 환경을 우리가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먼저 뒤돌아 볼 일이다. 이경용 금강유역환경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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