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로 시작된 국내 원자력 개발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근간이었다. 1956년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가 만들어졌으며, 1958년 대통령직속기관으로 원자력원과 그 산하기관으로 원자력연구소가 만들어졌다. 이후 원자력청과 과학기술처가 설립돼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이끌어 왔다. 최형섭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도 원자력연구소 소장 출신이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자립을 거쳐 2009년 UAE 원전 수출과 요르단 연구로 수출의 쾌거를 이뤘고, 올해는 원자력 종주국중 하나인 영국에서 추진하는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의 우선협상 대상국에 선정됐다. 명실상부하게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원자력 기술 정상 수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원자력 기술자립을 하지 못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해 온 선배와 동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필자 또한 원자력을 전공하고 안전성 높은 원자력 시스템 연구개발에 평생을 종사하며, 처음부터 내가 하는 일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과거 후쿠시마 사고와 원전 비리로 원자력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또한 안전한 원자력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전문가들은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자기 밥그릇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일하는 집단으로 매도됐다. 나아가 원자력 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원전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으로 변경돼 신재생에너지의 홍보 창구가 됐다. 탈원전 목소리에 원자력에 대한 연구개발 예산마저 대폭 삭감됐고, 그동안 국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원자력 정책은 국민들이 결정하는 몫으로 넘어갔다. 또한 원자력 정책은 여야 간 다툼이 되는 정치적 이슈가 되어 버렸다.

필자는 1년 전 추운 겨울, 광화문 촛불 집회에 가족을 데리고 참가해 지난 정권의 무능력과 국정 농단을 규탄하였고 현 정부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또한 지금도 마음속 깊이 현 정부가 성공하는 정부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는 마냥 찬성할 수는 없다.

에너지 정책은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여러 예측을 근거로 정책 방향을 세우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추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향후 에너지 수급에 대한 전망, 인구변화, 경제성장, 산업변화, 통일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이에 더해 환경, 안전, 경제성이 반영된 에너지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탈원전을 기본으로 한 에너지 정책은 지나치게 조급하다. 탈원전의 근거는 무엇보다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철저하게 안전을 강화하고 원자력계가 국민과 투명하게 소통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소수의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인들이 국내 원전에서 조만간 중대사고가 일어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특히 원전의 경우, 지진에 대한 대비가 철저히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장된 위험가능성으로 모든 상상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통계자료, 그리고 사실에 기반한 과학적 지식의 자리는 사라졌다.

원자력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지 않다. 여전히 우리나라 에너지원으로 유용하며, 과학기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는 그에 대한 체계적이고 철저한 조사와 보강을 통해 더욱 강화하고, 후속 연구개발을 통해 안전 연구를 지속함으로써 해소해 나갈 수 있다. 탈원전을 기본으로 한 신재생에너지와 LNG 위주의 전력원이 과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것인지 좀 더 유연하고 폭 넓게 고려해야 한다. 이기복 한국원자력연구원 소통협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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