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교수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파사현정(破邪顯正)`이 34%의 지지로 올해의 사자성어에 꼽혔다. 교수들은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파사현정에 이어 `해현경장(解弦更張)`이 18.8%의 선택을 받았다. 거문고의 줄을 바꿔 맨다는 뜻으로 개혁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정부 시대에는 거짓이 진실인 양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 실제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가 죽고난 후 대신 조고는 이세 황제 호해를 앞세우고 뒤에서 모든 권력을 거머쥐었다. 나중에는 신하들이 황제보다 자신에게 더 충성하는 지 시험하기 위해 사슴 한 마리를 황제에게 바쳤다. 조고가 "이것은 말입니다"라고 하자 황제는 웃으며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이것은 사슴이오"라고 답했다. 조고가 대신들을 둘러보며 묻자 어떤 사람은 말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사슴이라고 대답했다.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암암리에 모두 처형됐고 모든 신하들은 조고를 두려워했다. 2200년 전 중국의 일인데 마치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본 듯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지록위마를 추천했던 한 교수는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해 지록위마의 뒤를 이었던 사자성어는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춘다는 뜻의 `삭족적리`(削足適履)였다. 2013년 사자성어였던 `도행역시`(倒行逆施)의 연장선이다. 지록위마가 극에 달하자 2015년에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가 어지럽게 되는 혼용무도(昏庸無道) 상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2016년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는 `임금은 백성이라는 물 위에 떠 있는 배`라는 의미로 민심에 따라 왕위를 뒤집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탄핵으로 혼군이 물러나게 됐다.

한국 기자들이 사자성어의 나라 중국에서 폭행 당했다. 국민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의 90% 이상이 부정적 반응이었다. 사슴을 말이라고 부르는 현실을 눈감아온 댓가다. 지록위마를 한 이들이 파사현정의 대상이 된 건 당연하다. 일부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 전체가 독자의 신뢰를 잃은 건 사실이다. 변명보다는 스스로 파사현정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때다. 취재2부 이용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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