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심양에서 인질 생활을 마친 소현세자가 귀국한지 두 달 만인 1645년(인조 23) 4월 26일 34세의 나이로 급서하자, "인조는 관에 재궁(梓宮; 임금의 관)이란 호칭 대신 사대부나 서인에게 쓰는 널 구(柩)자를 쓰게 했다. 무덤의 이름도 원(園) 대신 묘(墓)자를 쓰게 했다. 장남의 상사에는 부모도 삼년복을 입어야 했으나 영상 김류, 좌상 홍서봉 등은 일년복으로 의정해 올렸고 인조는 한 달을 하루로 치는 역월제(易月制)를 실시해 12일로 정했다가 7일 만에 끝내 버렸다."(이덕일, 2010).

인조의 에니어그램 성격유형은 8번이며 별칭은 `도전자`이다. 그의 성격특성은 `욕망`과 `만족(satisfaction)`이라는 격정으로 규정된다.

이들에게는 물질적 필요가 적시에 충족되기를 바라는 강한 욕구가 있으며 좌절을 견디지 못한다. 가볍게 주고 받는 말이나 별다른 설명도 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향해 나아가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

1595년 11월 7일(선조 28)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의 장자로 태어난 인조의 형제들은 모두 넷이었는데 그의 둘째 동생인 능창군이 역모로 모함을 받아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하였고, 부친도 이 일로 영향을 받아 비교적 이른 나이인 40세에 사망하였다.

조선시대 일어난 두 번의 반정(反正)은 명분은 비슷했지만, 그 방법은 서로 달랐다. 즉 연산군을 폐한 중종반정의 주역이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임에 반해 광해군을 폐한 반정은 인조가 바로 주역이었다. 그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정변을 기획하고 앞장섰는데 그의 가문에 일어난 불행의 배경과 광해군이 겹치면서 원한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인물한국사).

게다가 그를 도운 서인 세력이 대북파의 위세에 밀려 권력에서 소외된 것도 쿠데타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에니어그램 8번 유형에게서 나타나는 분노에 기반한 복수심의 다른 표현이었다.

광해군의 패륜과 중립외교 대신에 등장한 성리학에 기반한 도덕정치와 친명반청의 정책기조는 1627년(인조 5)의 정묘호란과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으로 이어졌다. 1637년 1월 30일에 청에 의해 강제된 삼전도의 굴욕은 인조를 극도로 분노케 하는 사건이었으나,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지지 못한 당시의 성리학적인 정치인들에게 별다른 방도는 없었다.

"「인조실록」은 `곡식으로 진기한 물품과 무역을 하느라 관소(심양관)의 문이 마치 시장 같았으므로, 상이 그 사실을 듣고 불평스럽게 여겼다`라고 적고 있다"(이덕일, 2010). 청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인조는 오히려 인질로 끌려간 세자가 청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의심하였고, 세자의 죽음에 독살설까지 돌았다.

에니어그램 8번 유형들은 의식 수준이 안정된 상황에서는 관대함과 포용력을 보이지만, 자신의 뜻을 거스르거나 자극하는 일에 대해 지나친 의심과 분노, 복수심을 표출하면서 종종 본질을 그르치기도 함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현상진 대전시민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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