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면 집에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하겠다." "명쾌하게 답변하면 싸움을 붙이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기 때문에 불편해 보이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초청 강연에서 `문재인 정부가 아주 잘하는 분야와 못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한 말이다. 얼핏 들어도 본인의 생각을 다 속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지난 달 28일 서울 성북구청 강연에서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는 것을 보면 이견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지지운동으로는 정부를 못 지킨다."라고 소신 있는 말을 했다가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적폐세력`이라고 뭇매를 맞은 상처가 꽤나 아팠던 모양이다.

그런 안희정 지사가 요즘 누구보다도 바쁘다. 전국을 누비며 지방분권 전도사로서 `강연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을 통해 거물(?) 정치인이 된 그의 말과 행보는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비록 지난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농어촌 현장 방문보다 외부 강의 횟수가 턱없이 많다며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그의 잠행(潛行)은 계속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안 지사의 대권을 향한 정치적 행보는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3선을 `패싱`하고, 충남 천안(갑)이나 서울 노원(병)·송파(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후 첫 금배지를 달고 당당하게 프로 무대에 데뷔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는 시나리오 정도였다. 이는 안 지사의 본격적인 정치 입문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동시에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그런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안 지사의 한 측근이 "도지사 임기를 채우는 것을 검토하고 있고 다만 당의 요청이 있을 경우 심사숙고하겠다는 것이 안 지사의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안 지사 측은 와전된 것이라며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섰지만, 진실 여부를 떠나 이 말 대로라면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다. 성공한 도지사로서 3선은 차치하고 임기를 마친 후 바로 당권에 도전하거나 입각(入閣)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입각은 취임 1년을 막 넘긴 대통령의 개각 의중과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여러 정치적 상황이 고려돼야만 가능하다. 무엇보다 안 지사가 지난 경선에서 패한 주원인이 조직력 약화였다면 당의 중심에서 조직을 단단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고 볼 때 이 길을 택하기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내년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각 정당은 인재 발굴과 조직 정비에 나서고 잠재적 후보군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주말 한 충남지사 유력 후보는 자신의 과거 지역구에서 1,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지역위 당원대회를 열었다. 또 현직 시장과 도의원 등도 출판기념회와 기자회견를 갖고 충남지사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런 와중에 안 지사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어떤 자리에서 누가 묻던 "확정된 게 없으니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고 말하고는 은근 슬쩍 넘어간다. 물론 확실하게 정해진 바가 없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안 지사의 이런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심지어 공무원들조차 행정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해도 재선 지사로서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도정에 집중할 수 있지 않겠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선택은 안 지사의 몫이다. 재·보궐 선거 후 당권에 도전하든 아니면 남은 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입각을 생각하든 지금쯤이면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 속 시원하게 말할 때가 됐다. 강요할 일도 아니지만 더 이상 시간 끌 일도 아니다. 이 또한 안 지사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특히 도민에 대한 도리다. 송원섭 충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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